'비(非)국민투표'란 없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모든 선거는 국민이 한다. 따라서 영어로 레퍼렌덤(referendum)이나 플레비사이트(plebiscite)라 일컫는 '국민투표'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선거 이외의 국정상 중요 결정사항에 대한 투표'에 적합한 어휘가 아쉽다. 아무튼 국민투표는 고대 로마 때부터 민회(民會)에서 시행했지만 전체 국민의 본격적인 국민투표는 1852년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의 경우가 처음이다. 쿠데타를 일으켜 10년 임기의 대통령이 되자 그는 국민투표로 추인받은 뒤 스스로를 나폴레옹 3세라 불렀던 것이다. 그런 프랑스는 1945∼80년대까지 무려 18번이나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69년엔 드골이 국민투표 패배로 하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독일도 1934년 히틀러가 국민투표로 총통에 취임했고 55년 자르(Saar)의 서유럽화(化)도 국민투표로 결정했다. 하지만 국민투표 만능 국가라면 스위스부터 꼽힌다. 92년 9월의 국민투표만 해도 ①알프스산맥에 무개(無蓋)화차가 통과하는 터널 2개를 뚫을 것인가의 여부 ②증권거래 때 물리는 인지세 폐지 여부 ③공공택시 존폐 여부 등 6건이었다. 잦을 땐 월 1회도 불사한다. 같은 시기 아일랜드에서는 “86년 부결된 이혼·낙태 합법화 국민투표를 내년(93년)에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탈리아의 개인적인 마약 사용 합법화도 93년 국민투표로 결정했다. 지난달에도 구 소련에서 독립한 라트비아와 발트해 연안국인 에스토니아가 EU 가입에 찬성했는데 반해 스웨덴의 유로화(貨) 도입 국민투표는 부결됐다.
대통령 재신임 국민투표도 없었던 게 아니다. 93년 러시아 국민투표는 4개 결정 사항 중 첫 번째가 '옐친대통령 재신임 여부'였다. 이제 12월중의 노대통령 재신임 국민투표는 기정사실처럼 돼버렸다. 1천억원의 엄청난 비용도 비용이지만 쓸 데 없는 국력 낭비와 깊어지는 갈등의 골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吳東煥(논설위원)
국민투표
입력 2003-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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