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세상을 고통과 괴로움, 108가지의 번뇌로 가득한 곳이라고 말한다. 중생들은 ‘참다운 나’를 알지 못하고 욕망과 무명(無明)에 허우적댄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는 각종 비리와 부정, 계층간의 갈등과 반목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깨달음과 부처의 길을 위해 부모형제 등 현실과의 인연을 끊고 속세를 떠나는 것을 출가(出家) 또는 사신(捨身)이라고 한다. 죄수에게 사형을 선고하고는 깊은 고뇌에 빠졌다가 출가해 조계종 종정까지 지낸 판사출신의 스님에서부터 지난해 이맘때는 치안감으로 서울지방경찰청 차장이었던 김기영씨가 명예퇴직서를 내고 불교에 귀의했다. 이번에는 일간지 편집국장과 방송사 사장, 국회의원, 대학총장을 역임한 박현태씨가 고희(古稀)의 나이에 선운사에서 동료 196명과 함께 지연(志淵)이라는 법명과 함께 계(戒)를 받아 화제다.
고행이나 수도보다는 말년에 사회에 봉사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사회의 최고위직을 두루 지냈던 그로서는 모든 것이 허망할 뿐이라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기독교 신자인 두 딸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더 이상 잃을 것도, 바랄 것도 없다는 생각에 이 길을 택했다는 박 전사장은 내년 7월 남양주 경춘도로변의 한 절에서 주지를 맡을 예정이라고 한다. 마음에 수련을 쌓으려는 이는 박 전사장이나 김 치안감 뿐만은 아닌 것같다. 세태가 각박해져가면서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절을 찾아 산사체험을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현실이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가져다 주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살이가 복잡다단해지면서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으려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모든 종교가 '깨달음'이 없으면 무의미하게 되듯이 자신을 깨달아야 할 때다. 요즘같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에게는 결국 마음을 스스로가 잘 다스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준구(논설위원)
전 방송사 사장의 출가
입력 2003-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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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2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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