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BBC가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가 발견됐다고 보도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소로리 볍씨'는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공인받았던 중국 후난(湖南)성 출토 볍씨 보다 4천500년이나 더 묵은 1만5천년의 나이로 밝혀졌다고 한다. '소로리 볍씨'의 출현은 쌀을 주식이자 신물(神物)로 삼았던 우리 민족의 '쌀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반가운 고고학적 쾌거다. 쌀을 재배해 밥을 지어 먹었던 농경민족이 1만년 전부터 한반도에 존재했다면 '개천(開天)의 역사'를 한참 위로 올려놓아야 할 일 아닌지 모르겠다.
쌀은 한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작물이다. 작은 쌀 한톨 마다에 조상의 혼과 얼이 담겨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주단지에 조상의 신체로 여긴 쌀을 넣어 섬기면서, 그 양이 줄거나 빛이 변하면 재난의 징조로 여겼다. 소반위에 낟알을 흩어뿌려 몇알 거두어 점을 치는 쌀점은, 쌀이 신의 현신(現身)으로 신탁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정성이 88번이나 거듭 닿아야 거둘 수 있는 쌀이니 신성화는 당연지사다.
그런데 누천년 신성의 대상이던 쌀이 최근 몇년 사이에 화려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예부터 진상미로 유명한 경기미만 해도 '임금님표(이천)' '대왕님표(여주)' '통일로 가는 길목(파주)' '남토북수(연천)' '임꺽정(양주)' '수라청(화성)' '해솔촌(포천)' '햇토미(시흥)' 등 18개 브랜드를 달고 고장의 명예가 걸린 명품대결을 펼치고 있다. 이같은 양상은 경기미에 대항하기 위한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소비가 해마다 줄어들면서 쌀이 신성(神性)을 잃고 보관이 골치아픈 천덕꾸러기로 전락한지 오래다. 문제는 쌀의 신기(神氣)가 빛을 잃은 산업화 과정에서 현대인의 인성도 그만큼 천박해졌다는 점이다. 모쪼록 '브랜드 쌀' 경쟁이 우리 먹거리로서 쌀의 위상을 되찾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尹寅壽(논설위원)
'브랜드 쌀'
입력 2003-10-28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3-10-28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