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이르는 세계 파멸의 괴겁(壞劫)에는 세 가지가 있다. 노아의 홍수와 같은 겁수(劫水), 태풍 매미와 같은 겁풍(劫風), 고대 로마의 대 화재와 1870년의 시카고 대 화재, 그리고 대형 산불과 같은 겁화(劫火)다. 인간은 이런 자연 재해에 속수무책이다. 겁화, 대형 산불만 해도 얼마나 무서운가. 근년의 예만 들더라도 1988년 미국 와이오밍주 산불은 6∼9월 석달 동안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포함해 65만㏊를 잿더미, 겁회(劫灰)로 만들었고 번개가 주범이었다는 89년 캐나다 매니토바주 산불은 2개월간 무려 200만㏊를 재로 만들었다. 87년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다싱안링(大興安嶺) 화재 또한 27일간 55만㏊를 태웠고 96년 내몽골 자치구의 산불도 4개월간 100만㏊의 산림을 초토로 만들었다.

그런데 LA를 포함한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에 대형 산불이 잦은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건조한 날씨에다 이맘 때 그 지역을 통과하는 건조한 푄현상의 사막풍, 즉 시속 150㎞의 산타아나(Santa Ana) 계절풍 탓이라고 한다. 우주선 콜롬비아호가 시커먼 연기의 사진을 전송하기도 했던 93년 10월의 그 산타아나 산불은 LA의 라구나비치 주택가를 휩쓸어 할리우드 스타 실베스터스탤론의 호화 별장 등 300여 채를 집어삼켰고 그 한 달 뒤 2차 발화한 산불은 찰스브론슨, 브루스윌리스 등의 대형 주택을 태워버렸다. 지난 27일 미 국립 기상청 인공위성이 촬영한 이번 화재 사진은 시커먼 연기도 아닌 시뻘건 화마(火魔)의 모습 그대로다.

한데 그런 대형 산불의 원인이 고의적인 방화(放火)라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18만㏊를 태운 작년 6월의 애리조나주 산불은 근무수당을 노린 한 임시직 소방대원의 방화로 밝혀졌고 이번 화재 역시 방화 용의자 2명을 쫓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지구의 허파를 불태우는 그런 '살산(殺山) 죄인'들이야말로 100년 200년 징역 감이다.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