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의 '판'은 씨름판, 놀이판과 같은 판이고 그런 마당이며 무대를 뜻하고 '판소리'란 소리를 장단에 맞게 판을 짜 부르는 소리다. 또 그 절묘하게 다듬어 놓은 명창의 한 마당, 한 무대를 '바디'라 이르고 바디 중에서도 어느 절정의 독특한 한 대목을 '더늠'이라 부른다. 오페라로 치면 아리아 중에서도 하이라이트가 '더늠'이다. 그런 대목의 청중은 그만 반하다못해 후줄그레 넋을 잃고 몰입하기 일쑤다. 잔잔한 슬픔과 자지러지는 슬픔, 달뜬 기쁨과 느긋한 기쁨, 솟구치는 분노와 가라앉아 여울지는 분노가 오색 실타래처럼 얽혀 때로는 폭포처럼, 더러는 실안개처럼 서리듯 넘어가는 절묘하고도 오묘한 소리라니!

그러나 우리만의 매력이며 예술이며 한 마당이어서는 아쉽고도 답답하다. 1994년 판소리 영화 '서편제(西便制)'가 '바람의 언덕을 넘어서'라는 멋진 제목으로 일본에서 상영돼 인기를 끌었고 '정념(情念)을 승화시킨 민족의 노래'라는 등 그곳 언론의 찬사를 받은 정도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데 지난 8월에야말로 우리 한자문화권을 초월한 낭보가 세계적 공연예술축제인 영국의 '에든버러 페스티벌'로부터 들려왔다. 'The Saga of Heongbo'라는 영어 자막을 곁들인 채 2시간에 걸쳐 완창한 김수연 명창의 판소리 '흥보의 전설'이 세 차례나 커튼 콜을 이끌며 벽안(碧眼)들을 사로잡았고 장장 5시간에 걸쳐 완창한 안숙선 명창의 '춘향가'는 10분간이나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축제에도 자유참가가 아닌 공식초청으로 갔었다.

그런 우리의 판소리가 2001년 5월의 '종묘제례악'에 이어 엊그제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인류 구전(口傳) 및 무형유산 걸작'에 선정됐다는 것은 더더욱 낭보가 아닐 수 없다. 김일성이 '쌕소리'라고 폄훼하는 바람에 북한에선 판소리가 사라졌다지만 우리에겐 다르다. 우리 예술 문화의 수출과 세계화야말로 물류 수출 못지 않게 긴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