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지구촌 각국의 고유명사에 대한 영문표기가 만만치 않은 시비를 일으키고 있다. 일제가 왜곡한 '국제 명함'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동해(東海)를 둘러싼 일본과의 외교적 분쟁이다. 우리가 동해표기의 역사적 연원을 따져 국제사회에 'East Sea' 표기를 주장하면서 일제때 고착된 '일본해(Sea of Japan)' 표기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8월 남북 학자들이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에 모여 'KOREA'라는 현재의 국호 영문표기가 일제 침략잔재라며 'COREA'로 변경하는데 합의한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올해 초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뉴스를 전하면서 “무슈 '로' 혹은 '노'?(M. Roh ou M. Noh?)”라는 제목의 부속 기사를 별도로 다뤘다. 즉 노 대통령의 해외이미지를 고려해 부정을 뜻하는 'No'와 발음이 같은 '노(Noh)' 대신 '로(Roh)'로 표기했다는 것이다. 요즘 당명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열린우리당'도 영문표기인 'Uri Party'에서 'Uri'가 '우리'가 아닌 '유리'로 발음되기 쉬워 골치 아프다고 한다. 한나라당이나 새천년민주당에 비해 음을 전하는 것은 물론 뜻을 표현하기도 어려워 해외 홍보에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유명사의 영문표기는 한번 정하는 것도 신중해야 하지만 지속적으로 반복 사용해야 세계의 공영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세계유산인 화성(華城)의 영문표기가 무려 9개나 돼 외국인들에게 혼란을 일으키기 쉽다는 지적이 나왔다(본보 10일자 10면 참조). 유네스코와 한국관광공사가 쓰는 '화성'의 철자가 다른 것은 물론, 수원시청 영문 홈페이지에는 무려 4가지 명칭이 나란히 배열돼있다. 외국인이 볼 때는 '세계유산 화성'이 9개로 존재하는 셈이다. 세계유산의 영문 이름 하나 통일시키지 못하는 낙후된 문화수준이 드러난 듯 해 부끄러울 뿐이다. /尹寅壽(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