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I think, therefore I am(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이다. “그렇다면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명제(反命題)도 성립하는 것이 아닙니까”라는 대학생의 질문에 대한 철학 교수의 대답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똑같은 짓궂은 반문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책을 쓴 종교철학자 함석헌(咸錫憲)선생에게도 던질 수 있을지 모른다. “선생님! 생각할 줄 모르는 요즘 백성들도 잘들만 살고 있는 건 어인 까닭입니까?”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요즘 사람들은 생각할 줄 모른다, 생각이 짧다, 사려가 깊지 못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역시 철학자들이 아닌가 싶다. 생각해 보니 그렇고, 짐작이 가고, 이해가 가고, 깨닫는 점이 있다는 이른바 '사과반(思過半)'이 반(半)은커녕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과반'이란 '역경(易經)'의 계사(繫辭)편에 나오는 말로 지자(知者)는 각괘(各卦)의 처음에 붙어 있는 말, 즉 '단사(彖辭)'만 봐도 그 괘의 뜻을 태반은 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현대인의 생각이 접시 물보다도 얕고 쥐꼬리보다도 짧은 까닭은 철학을 모르고 철학이 없기 때문이고 어릴 때부터의 철학적 사유(思惟) 훈련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플라톤은 철학은 '최고의 문예'라고 했고 키케로는 '영혼의 참다운 의술'이라고 했다. 철학과의 거리는 문예와의 거리에 비례하고 철학이 없이는 영혼의 질환을 치유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 철학자들이 내일을 제1회 '철학의 날'로 정해 행사를 벌인다니 우리 모두 '생각하는 철학적 갈대'임을 한 번쯤 확인하는데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미 11회 대회까지 치른 국제철학올림피아드(IPO)에 참가할 학생 선발을 위해서도 '철학의 날'은 필요하다.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