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높이 333m의 일본 도쿄타워를 사상 최대의 촛불 형상 불빛으로 만들어 장관을 이뤘지만 그 '촛불 타워'와 함께 떠오르는 촛불 영상이 있었다. 종악장에서 한 명씩 보면대(譜面臺)의 촛불을 끄고 퇴장하는 하이든의 45번 '고별 교향곡'과 1960년대 유대인 농부의 애환을 그린 노먼 주이슨(Norman Jewison) 감독의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리니스트(Fiddler on the roof)' 그 환상적인 밤 결혼식의 촛불 든 하객의 축하 장면, 그리고 촛불 20개만을 밝힌 어둠 속 연기로 유명한 폴란드 가르지니차 극단의 '아바쿰'―88년 8월 서울 문예회관 소극장에서도 상연했던 그 촛불 연극 장면 등이었다.

인류의 촛불 사용은 고대 그리스, 이집트와 기원 전 3세기 중국의 전국시대, 한반도의 낙랑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공자, 노자 시절까지는 몰라도 제갈공명의 '출사표'부터가 촛불 밑의 일필휘지였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괴테의 '파우스트' 등 명작도 촛불 아래서 쓴 것이다. 고고(孤高), 환상, 처절, 죽음의 촛불 영상으로 뇌리에 찍힌 슈베르트 영화의 슈베르트 악보 또한 촛불 그림자와 함께 탄생했다. 그런 촛불은 르네상스기 이후 여러 개의 촛불을 켜는 다등가(多燈架)의 출현과 함께 주로 결혼식, 장례식과 교회, 사찰 등의 종교의식 때 사용됐다. 1882년 에디슨의 전기 발명 이후에도 여전히 '화촉(華燭)을 밝힌다' '촉대(燭代)를 바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2월 2일 기독교의 성촉절(聖燭節) 거리 행진이나 부처님 오신 날의 제등행렬 등 특별한 예가 아니고는 촛불의 옥외 출타는 드물었다. 그런 촛불이 언제부턴가 집단적인 맹세와 고별 등 의식화(意識化) 의식에 불가결한 존재가 됐고 광장 시위의 상징처럼 돼버린 것이다. 지난 주말에도 서울, 부안 등을 뒤덮은 촛불 시위는 1년간 무려 500만명이나 참여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