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업(貸金業)은 유럽 역사에 점철된 유태인 수난사의 주요 원인이었다. 기독교도들은 성서에 “타국인들에게는 이자를 받되 형제들에게는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한 말씀을 들어 대금업 종사자가 많은 유태인들을 경멸했던 것이다. 기독교 중심의 유럽사회에서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유태인들로서는 사채업이 가장 안정적인 생계수단이었다. 그들로서는 동족을 제외한 이방인에게 사채를 놓는 것이니 하나님의 율법에도 어긋나지 않았건만, 생래적으로 유태인을 적대시한 기독교인들은 이들을 '돈과 성교해 돈을 불리는 마법사들'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유태인 샤일록은 빚 보증으로 '한파운드의 살', 즉 신체포기각서를 요구한 이유에 대해 유태인의 대금업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기독교도에 대한 분노와 증오 때문이라고 독백한다.

고리(高利)가 따르는 사채업, 즉 고리대금업은 기본적으로 증오를 배태하는 직업일 수밖에 없다. 고리를 무릅쓰고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그 만큼 사정이 절박한 사람들로 파산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사채가 고리인 이유와 채권 회수 방법이 악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근세까지만 해도 동·서양의 빈곤층은 모두 고리대금업자의 손에 고루한 세간살이 부터 시작해 종국에는 자식과 아내까지 팔아먹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최근 카드사들이 현금서비스 한도를 일제히 줄이자 100만명에 달하는 '돌려막기족(族)'들이 일거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을 넘는 건 시간문제인 모양이다. 결국 이들이 몰려갈데라고는 사채업자 밖에 없는데, 샤일록 방식의 '신체포기 각서'가 난무하는 가운데 고리대금업자를 살해하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속출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큰 걱정이다. 성경에서 고리대금업자의 소득을 '개 같은 자의 소득'이라며 하나님 앞에 바치지 말라 한 것도 '사채'로 인한 인성 파괴를 예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환, 마마 보다 무서운 '사채'가 횡행하니 답답한 세상이다. /尹寅壽(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