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은 지난 68년 12월5일 공포된 뒤 한동안 정부의 모든 공식행사에서 낭독해야 했고 선포일은 교육관련 최고의 기념식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초·중·고교 모든 교과서 맨앞에 실렸고, 학생 모두 이를 외워야 했다. 외우지 못하면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런가 하면 온 나라의 병영(兵營)에서는 그 짧지 않고 문맥이 까다로운 헌장을 줄줄이 암기하고 점호 때 차례로 소리쳐 외우게 하느라 소동이 일기도 했다. 73년엔 스승의 날마저 국민교육헌장선포일에 통합시켜 폐지하였다가 82년 5월 15일 다시 부활시킬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40대 이상이면 모두가 갖고 있는 기억들이다.
모레는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된지 35년 되는 날이다. 그런가 하면 94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기전까지 가정·학교·사회 등 모든 교육의 근본 지표로 군림했던 국민교육헌장이 영원히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날이기도 하다. 지난 11월18일 개최한 국무회의에서 올해부터 국민교육헌장 선포일을 국가기념일에서 완전 삭제하기로 의결했기 때문이다.
이은상·박종홍 등 국내의 원로급 학자들이 기초했다는 339자의 한글국어체 국민교육헌장은 탄생의 화려함 만큼이나 시대가 바뀔때마다 부침도 심했다. 일제때 천황의 교육칙어(敎育勅語)와 비슷하다는 비판을 받았는가 하면 권위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김영삼 정권이 출범한 94년에는 초·중·고 교재의 표지 바로 뒷부분에 있던 국민교육헌장을 모두 삭제시켰고 95년 12월에는 제정 28주년을 맞아 선포기념식 거행 및 교과서 수록 등 공식적 기능을 완전 폐지했다. 그후 이번에 대통령령으로 정한 국가기념일마저 삭제해 근대사에 묻히게 된 것이다. 중년의 머리속에 깊이 각인된 국민교육헌장. 나라가, 특히 정치와 교육이 혼란스런 이 시기에 개인과 국가의 조화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을 강조한 국민교육헌장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鄭俊晟(논설위원)
국민교육헌장
입력 2003-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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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0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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