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셔도 마셔도 싫지 않아 또 마시고(飮飮不厭更飮飮) 안 마신다 안 마신다 하면서도 또 마시고(不飮不飮更飮飮)…' 이렇게 읊조린 김삿갓의 술 가치관은 무엇일까. '역사―술=시시한 것' '세상―술=재미없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인생―술=0'일지 모른다. 0.3, 0.4 소수점 이하는 그의 시문일 것이고…. 맥주 거품 목욕을 즐겼다는 클레오파트라도 대답하리라. '내 인생에서 술을 빼면 줄리어스 시저와 안토니우스만 남는다'고. 그리고는 요염한 미소로 반문할 것이다. 맥주에 빠져 죽든 다른 술독에 빠져 죽든 술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두보(杜甫)가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노래한 이백(李白) 등 음주 팔선은 시선(詩仙), 시성(詩聖)이지만 주성(酒聖)으로도 꼽혔다. 그런데 성인 성(聖)자는 놀랍게도 '맑은 술 성'자이기도 하다. '성인→맑은 술을 즐기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존경한다는 존(尊)자도 '술 그릇 존'자이기도 하고 고관대작이라고 할 때의 벼슬 작(爵)자도 '술잔 작'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술과의 거리는 존경받는 벼슬자리와의 거리와 비례한다는 암시 같기만 하다. 술을 가리켜 '천지미록(天之美祿)'이라고 일렀다. 하늘에서 내려주는 좋은 복록, 하늘 복이라는 뜻이다. 미주(美酒)니 약주(藥酒)니 영주(靈酒)니 하는 찬사도 이 때문이리라. 아니, 술을 점잖게 이르는 말, 술의 대명사가 '약주' 아닌가.
현진건(玄鎭健)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니라 이 '술 권하는 12월'에 주당들의 술맛을 싹 가시게 하는 연구 결과가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50대 이상에겐 적당한 음주는 물론, 딱 한 잔의 술조차 뇌 조직을 손상케 한다는 게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 연구팀의 주장이다. 하기야 약간의 술은 몸에 좋다는 정설을 일축하는 주장은 전에도 나왔었다. 딱 한 잔의 술도 나쁘다는 게 1994년 11월 1일 세계보건기구(WHO) 한스 엠블라드 박사의 경고였다. /오동환(논설위원)
딱 한잔의 술
입력 2003-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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