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정해진 법이 법에 맞느냐(合致) 안 맞느냐를 법으로 판단한다는 것이야말로 불법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상위법(上位法)이 하위법을 재정(裁定), 재판한다고 해도 좀 그렇다. 더구나 헌법을 재판하다니! 법 헌(憲), 법 법(法)자로 '法'자가 두 개가 붙은 '헌법'은 법 중의 법, 법의 법이 아닌가. '헌법재판소'를 뜻하는 독일어(Verfassungsgericht)를 봐도 이상하다. 더욱이 Verfassungs는 헌법, gericht는 재판을 뜻하므로 '재판하는 장소'라는 뜻은 들어 있지 않다. 또 한 가지 기묘한 건 6명 이상의 재판관이 신성한 최고의 헌법을 “위헌” “위헌” 하는데 3명 이하의 재판관은 “합헌” “합헌”…하는 아이러니컬한 소수결(少數決)이 거꾸로 '위헌'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헌법재판이란 법령의 합헌성을 심판하는 특별재판이라기보다는 이미 정해진 법을 초법적으로 해석하는 '법적 혁명' 재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임무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위헌법률 심사, 탄핵 심판, 정당 해산 심판, 헌법소원 심판, 국가기관 사이의 권한 쟁의 심판 등이고 연방국에서는 연방과 지분국(支分國) 또는 지분국 간의 권한쟁의도 다룬다. 사법적 헌법보장 방법으로는 그 유형에 따라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이탈리아처럼 특별법원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고 스위스처럼 일반법원 안에 특별한 조직을 설정하는 경우, 미국처럼 일반 법원에 의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제헌 헌법에서 이미 헌법위원회로 하여금 위헌 여부를 심사토록 했고 제2공화국(政) 때인 1960년 헌법에 설치했다.

높은 곳, 등받이가 길기도 한 의자에 늘어앉은 근엄한 헌법재판관들이야 근사하기만 하다. 하지만 96년 2월 5·18 헌재 때 4명이 합헌을, 5명이 위헌을 주장했던 것처럼 때로는 고도의 정치성을 띠기도 한다. 이번 대통령 탄핵의 '거창한 공'을 넘겨받은 헌재는 그런 문제는 없다고 했으니 귀추가 궁금하다.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