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들이 손짓한다. 남녘 매화는 벌써 끝물이고, 산수유는 이제 막 기지개를 켰다. 개나리와 벚꽃도 겨울잠을 털어내느라 마지막 용을 쓰고 있다. 진달래 붉어 갈 날도 머잖았다. 벌 나비 부르려는 몸단장이건만, 먼저 마음 달뜨는 건 봄처녀만이 아니다. 저 꽃무리 속에서 생명소식 한아름 힘차게 쏟아질 듯하다. 겨울공화국 속 우리네 찌든 삶에도 후드득 꽃등 줄줄이 밝혀졌으면 좋겠다. 봄꽃무리가 우리를 부른다.
 
봄꽃을 맞는 방법은 두 가지다. 눈 뜨고 마중가기와 눈 감고 기다리기. 없는 여유 부러 짜내 찾아가도 좋고, 지긋이 앉아 오랜 벗 만날 날 손꼽는 설렘을 즐겨도 괜찮다. 다락같은 기름값에 우우 몰려다니며 꽃가지나 부러뜨리지 말라고 탓할 것도 없고, 괜히 고상한 척 시답잖게 신선 흉내나 낸다고 눈흘길 까닭도 없다. 피고지는 봄꽃은 무심한데, 오락가락 마음만 분주하다면 하늘이치를 한 치도 이해못한 처사요, 보아달라 아우성치는 꽃들에게 달려가고픈 마음을 억누르는 것도 사람도리는 아니다. 꽃그늘 아래 서면 눈감아 봄향기 품은 뜻을 헤아릴 줄 알고, 어디 있든 봄꽃 본 듯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이다.
 
꽃놀이라는 게 본시 사람꽃을 피우자는 바람 아니었던가. 도법스님, 수경스님을 따라 온 나라를 걸어서 돌겠다고 나선 지리산 이원규 시인이 그랬다. '발자국마다 풀씨가 움트고 꽃이 피는데, 그대 또한 나날이 그러한지요.' 문화일보에 실렸던 이 편지에서 시인은 고백한다. '오래 걷다보니 비로소 사람의 발걸음이 바로 꽃이 피는 북상의 속도요, 단풍 드는 남하의 속도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이들은 지금쯤 어느 꽃그늘 아래를 지나고 있을까.
 
봄꽃무리들이 그렇게 뚜벅뚜벅 밀고 올라오는 중이다. 쪼들리는 살림이나마 우리도 가서 같이 꽃이 되자고 피붙이와 벗을 살살 꼬드길꺼나, 아니면 봄바람에 괜히 휩쓸리지 말고 아직은 점잖게 지켜보자고 애써 타이를꺼나. 매우 고민되는 주말이다. /楊勳道(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