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에서 출발한 화신(花信)이 빠르게 북상중이다. 매화, 산수유, 목련, 벚꽃, 진달래, 개나리의 개화와 낙화로 삼천리가 꽃다발 가슴에 안은 봄처녀의 형상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을 맞아 몸과 마음이 달뜨는 건 자연의 피조물인 인간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유독 봄하면 여자의 계절로 인식하는 고질적인 사고는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최근 뇌속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에 감성적인 여자가 예민하게 반응해 남자보다 봄에 더 민감하다는 의학적인 조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또 봄을 맞아 일조량이 늘어나면 멜라토닌 분비가 증가하는데 이것이 남자보다는 여자를 더욱 자극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두 호르몬이 남성에게도 같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봄처녀'를 증명할 정설로는 역부족이다.

'봄=여자'라는 등식은 봄의 생명력을 여성의 다산과 결부지어온 인류의 직관이 대대로 쌓인 결과이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원형은 원래 풍요와 재생이라는 원시신앙에 근거한 오리엔트의 대지모신(大地母神)이다. 동양에서도 땅과 여자는 음(陰)을 대표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지와 여성은 이음동의어이다. 그러니 대지가 한창 화사한 계절에 여자 심신이 적극 호응하는 것은 사계의 순환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유정의 '동백꽃'에서 점순이가 구운감자를 건네주며 집적대다 못해 '나'를 얼싸안고 동백꽃 그늘로 무너져내린 것도 다 수상한 계절 탓일게다.

올 봄, 정치권에 여성들이 도드라져 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 민주당의 추미애 선거대책위원장을 비롯해 주요 3당의 대변인들이 모두 여성이다. 열린우리당은 여성장애인에게 비례대표 1번의 영광을 헌정했다. 패권지향적인 남자가 지배해 온 한국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극적인 성전환(?)이다. 이왕 일이 이리 된 바엔 남성이 주도해 온 파괴지향의 정치가 여성의 섬세한 화합형 정치로 질적 전환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렇더라도 끝도 안보이는 남자들의 추락은 어디쯤에서 멈출 것인지, 남녀의 희비가 유난한 봄이다. /尹寅壽〈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