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의 공주 아라크네는 직물과 자수 솜씨가 뛰어났다. 그 뽐내는 모습이 눈꼴시었던 아테네 여신은 노파로 변장하고 찾아가 그녀와 옷감짜기를 겨뤘다. 너무나 완벽한 실력에 기가 질린 아테네는 그녀의 옷감을 찢어 버렸고, 그녀는 목을 매 자살하고 만다. 아테네는 죽은 아라크네를 거미로 만들었다. 거미류를 뜻하는 아르크노이디아(Arachnoidea) 아라크니다(Arachnida)는 그녀의 이름으로부터 비롯됐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거미에 대한 전통적 이미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이 그리스신화에서도 실 뽑는 솜씨 하나는 기가 막히지만 그래봤자 미물이라는 폄하가 느껴진다. 이육사(李陸史)의 글은 거미에 대한 동양의 전통적 인식을 보여준다. '누가 지주(蜘●·거미의 한자명)를 천재라고 하였습니까? 그 놈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동안 그 작은 날파리나 부드러운 나비 나래를 말아 올리고도 모른 체하고 창공을 쳐다보는 위선자입니다. 그 주제에 사색을 하는 듯한 얼굴은 멀쩡한 배덕자입니다'.
 
물론 문화권에 따라 거미를 높이 치는 경우도 있었다. 시베리아에서는 해충을 잡아먹는 거미를 존경하기도 하고, 아메리카의 어떤 섬지방에서는 청소부 거미를 시장에서 사고 팔기도 했다. 칠레에서는 독거미에게 물리면 남성의 성욕이 크게 높아진다는 속설이 있었다. 이 믿음은 의학적으로 증명되었고, 거미독이 심장기능 강화, 피임, 알츠하이머병 치료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거미줄만큼 신축성과 강도가 동시에 뛰어난 천연소재는 없다는데 착안해 암염소의 젖에서 거미줄 성분을 뽑아내는 생명공학 연구도 성공했다고 한다. 거미줄은 수술용 실과 나노섬유 생산에도 활용된다.

최근 남양주에 '아라크노피아(아라크니다+유토피아)'라는 거미박물관이 들어섰다. 거미박사 김주필씨(동국대교수)가 수집한 거미표본 2천여종으로 꾸민 거미천국이다. 이번 주말 아이들과 함께 가서 하찮은 미물의 신비를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楊勳道(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