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에 든 물건으로 여기더니/ 어이 알았으랴/ 검은 꽃이 흰 깃에 떨어질 줄을'―당(唐) 태종 이세민(李世民)이 고구려를 주머니 속 물건으로 알고 침략했다가 안시성주(安市城主) 양만춘(楊萬春)의 화살에 왼쪽 눈알이 빠진 것을 고려의 목은 이색(李穡)은 이렇게 읊었다. 그는 양만춘의 화살을 '검은 꽃(玄花)'에, 당 태종의 눈알을 '흰 깃(白羽)'에 비유했던 것이다. '신궁'이라면 활과 화살의 상징인 로마 신화의 큐피드(Cupid)를 비롯해 아들의 머리에 얹힌 사과를 명중시킨 스위스의 전설적 영웅 윌리엄 텔, 이( )를 매달고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중국의 기창(紀昌), 영국의 전설적인 의적(義賊) 로빈후드 등이 꼽히지만 '신궁의 나라'하면 역시 우리 나라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한 개의 화살로 창공의 기러기를 두 마리, 세 마리씩이나 꿰뚫었다고 했고 그의 아들 이방원이나 수양대군도 으뜸 명궁으로 꼽혔다. 후고구려의 창시자 궁예는 이름부터가 아예 '활(弓)의 후예(裔)'다. 삼국시대∼조선 말기의 역대 왕들 치고 명궁 아니고 신궁 아닌 이가 없을 정도였다. 중국의 우리 한민족에 대한 멸칭인 '동이족(東夷族)'의 '동이(東夷)'가 '동쪽 오랑캐'라는 뜻도 되지만 '夷'자의 구조가 '大+弓'임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양궁 낭자들이 20년에 걸쳐 올림픽 6연패를 한 것도 놀랍지만 이번에 금메달을 딴 박성현이 96년 애틀랜타의 김경욱에 이어 다시 한 번 지름 12.2㎝의 10점 짜리 골드 과녁하고도 그 한복판 1㎝ 크기의 카메라 눈을 맞혀 깨뜨렸다는 것은 그리스 신들도 깜짝 놀랄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바로 그 과녁의 정곡(正鵠)을 순우리말로는 '알과녁'이라 한다. 그러나 영어 '불즈아이(bull's eye)'는 잘못인 것 같다. 무슨 황소 눈이 그렇게 작을 수는 없지 않은가!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