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의 음식점과 상점마다 위폐(僞幣) 감정기가 설치된 것은 1990년대 초였다. 위폐범들은 무엄하게도 알라 신의 사자(使者)로 떠받드는 후세인의 초상화가 모셔진 고액권을 마구 찍어내 가짜 돈 비율을 10% 넘게 만들었다. 그들은 위폐 죄에다 알라 신 모독죄가 추가돼 체포 즉시 사형에 처해졌다. 러시아도 이라크와 난형난제(難兄難弟)의 위폐천국으로 꼽힌다. 그런데 러시아의 위폐는 루블화가 아니라 주로 미화 100달러와 독일 돈 1천마르크 짜리였고 유로화 통용 후에는 유로화 고액권과 달러로 바뀌었다. 위폐 없는 나라는 없을지 모른다. 86년 8월 파리서 압수된 7천만프랑(약 100억원) 위폐사건은 유명했지만 더욱 충격적인 건 위폐범 세르주 리브로제가 작가였다는 점이다. 우연이었던 건 그 이듬해인 87년 4월 일본 최대 위폐사건(36억엔)의 범인 다케이(武井遵)도 동화작가였다는 점이다. 돈에 눈이 멀면 지성도 체면도 마구 버린다는 것인가.

화폐의 역사는 곧 위폐의 역사다. 근대 일본 최초의 통일 지폐는 메이지(明治) 정부가 위폐 방지를 위해 독일 인쇄기를 도입, 1872년에 발행한 것이었지만 2엔 짜리 위폐가 등장한 건 그 5년 뒤였고 400배 현미경으로도 판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한 것이었다. ‘정교’가 아니면 위폐랄 수도 없다. 유로화가 나온 지 7일만인 2002년 1월 7일 적발된 이탈리아 4인조의 유로화 위폐나 작년 6월 대만서 적발된 중국 인민폐 10억위안(약 1천500억원)도 그렇다. 우리 나라에선 8·15 직후 100원(1百圓)권 위폐를 900여만원이나 찍어낸 조선정판사 사건이 꼽힌다.

100달러 짜리 위폐가 횡행하는데도 은행에서조차 감식하지 못한다니 딱한 일이다. 아무리 복잡하고 까다로운 도안으로 찍어내도 보다 정교한 위폐 기술이 1㎝ 간격으로 따라붙을 테니 마(魔)의 0.01초 차이의 경주는 끝이 없을 것인가./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