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 6일 인도의 찬드라 셰카르 총리가 벤카타라만 대통령에게 돌연 사표를 냈다. 이유는 '벤카타라만 대통령의 그림자'라는 비웃음이 아니라 집권당인 국민회의당 라지브 간디 당수의 꼭두각시라는 비난이 더 이상 참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줏대 있는 총리가 아닐 수 없다. 2002년 10월에 취임, 국회를 해산하는 등 언뜻 강력해 보였던 네팔의 찬드 총리도 오직 국왕 갸넨드라의 괴뢰(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야당의 조롱을 견디다 못해 작년 5월 사임함으로써 용기 있는 총리의 반열에 올랐다.
일본의 가이후(海部俊樹) 총리 역시 G7 회의에 참석, 돈이나 내는 '가이후'가 아닌 '사이후(지갑)' 총리로 여기는데 불만이 높은데다가 요미우리(讀賣)신문이 '하다못해 만화에서만이라도'라는 제목을 붙여 가이후를 중앙에 앉히고 다른 G7 멤버들을 뒤에 병풍처럼 세운 카툰(만화)을 게재하자 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91년 7월 런던회담 때부터는 자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주장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 '돈지갑 총리'라는 오명을 씻었다. 그래도 워낙 대외 지명도가 낮아 “가이후 총리를 아느냐”는 일본 TV 특파원의 질문에 런던의 한 시민은 '타이푸드(태국 음식)'가 아니냐고 반문했다지 않던가. 하지만 대통령 중심제가 아니라 입헌군주국인 일본의 총리 권한은 막강할 수밖에 없다.
'겉돌기 총리' '의전(儀典) 총리' '대독(代讀) 총리'라는 불명예로 가장 유명한 나라는 역시 한국이 아닌가 싶다. 1948년 8월의 초대 총리 이범석(李範奭)으로부터 오늘까지 대독 총리가 아니었던 총리가 누가 있었던가. 대통령은 그 시간에 무슨 피치 못할 중대사가 있길래 의회 연설을 총리로 하여금 대독케 한다는 것인가. 그건 대통령의 직무 회피에다 의회 모독이 아닐까. 이해찬 대독 총리를 지켜보는 숱한 국민의 느낌이 그럴 것이다. /吳東煥(논설위원)
대독(代讀) 총리
입력 2004-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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