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은 조선왕조 최후의 명군 정조가 왕조 개혁의 의지를 담아 건설한 미완의 신도(新都)이자 그가 주도한 조선 르네상스의 총화가 응축돼있는 세계문화유산이다. 정조는 화성으로 천도해 남루해진 왕조의 면모를 일신하려 했으니, 화성 축조에 인재와 자본을 쏟아부었다. 정약용이 설계한 도면에 따라 명신 채제공이 축성을 총지휘하도록 했고, 3년 국책사업에 동원한 연인원이 38만명이요 예산이 83만3천냥에 달했다. 그러나 왕조개혁에 대한 정조의 열망은 화성 완공 4년만에 정조의 죽음으로 막은 내린다.
 
화성은 한국 정신문화의 진수인 효(孝)사상의 중심이기도 하다. 24년간의 재위기간중 선친의 무덤을 찾기 위해 66차례의 능행을 나섰을 정도로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심은 극진했다. 이 능행길에 빚어진 갖가지 일화가 경기도를 효 문화의 중심으로 우뚝 세우고 있으니 시흥시의 전하봉영놀이, 안양의 만안답교놀이는 물론이고 수원 지지대, 의왕시 왕곡동 등 여러지명에 그 흔적이 역연히 남아있다. 정조의 능행길 자체가 한국 효문화벨트이고 그 정점에 바로 화성이 우뚝 서있는 형국이다. 미완의 신도시였던 화성이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에 된건 그 건축문화와 정신문화의 무게상 당연한 일이다.
 
엊그제 막을 내린 일본 삿포로 눈꽃축제의 뒤끝이 영 심란하다. 축제의 중앙광장을 장식했던 화성의 남문, 팔달문 눈조각이 실물과 영 딴판이라서다. 한국 효 문화의 표상이자 귀중한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국적불명의 얼치기 성곽으로 재현한 일본인들의 무성의는 정말 괘씸하다. 그들의 야스쿠니 신사를 허무맹랑하게 재현하고 전세계 관광객들에게 희롱시킨다면 그 기분이 어떨지 묻고프다. 눈조각 설치를 제안한 경기관광공사나, 팔달문 자료를 전달한 수원시 또한 현장확인 한번 없이 어이없는 꼴을 당했으니 넋 나간 사람들이긴 마찬가지고···. 그나저나 날 풀리면 엉터리 팔달문이 녹아내리는 추한 모습은 또 어떨런지, 그저 기막힐 뿐이다./尹寅壽(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