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이 광화문 편액을 직접 쓰고 현판식을 갖던 날의 이야기라고 한다. 서예가였던 국회의원 윤제술이 그 자리에 참석했다. 가림천이 벗겨지자 누가 쓴 글씨인지 모르는 윤제술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아니, 어느 놈이 저걸 글씨라고 썼나!” 질겁을 한 동료 정치인이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대통령을 가리켰다. 당황하기는커녕 그는 더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 이 사람아. 그래도 뼈대 하나는 살아있는 글 아냐?” (손철주, '그림, 아는만큼 보인다')
 
박 대통령의 글씨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평가가 있다. '글씨에 힘이 넘치다 못해 살기까지 풍긴다'며 사령관체니 혁명가체니 떠받들기도 하고, '공을 들인 솜씨지만 시골 선비 수준을 넘지 못했다'고 보기도 한다. 뒷말은 박 대통령의 글씨로 현판을 20여개나 새긴 인간문화재 각서장(刻書匠) 오욱진의 평이다. 조선시대 왕들의 경우 현판 정도는 글씨 잘 쓰는 신하들에게 맡겼지만, '박통'은 직접 쓰는 걸 좋아했다. 박통이 남긴 현판만 해도 전국 28곳에 34개에 이른다. 공보비서실에서 대통령 글씨가 어울릴만한 상징물을 골랐다는데도 그렇다. '뼈대 하나는 살아있는' 글씨를 자랑하고 싶어서였는지, 국민의 삶 구석구석까지 '조국근대화' 정신이 스며들도록 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였는지는 알 수 없다. 전국 방방곡곡에 획일화된 '박통변소'와 문화주택을 만들고, 공공건물은 '박조건축(朴朝建築)'으로 규격화한 걸 보면 양수겸장이지 싶다.
 
지난 주말 고양시 24개 시민단체가 친일청산 차원에서 또하나의 '박통현판'인 행주산성내 충장사 현판교체 등을 논의하자며 시장 면담을 요청했다. 13일엔 예산 충의사 현판을 떼내었던 양수철씨 선고공판이 있고, 15일엔 충의사 후속대책을 결정하기 위한 문화재심의위가 열릴 예정이다. 극일 상징터와 관동군 장교 출신 대통령의 현판. 결론이 궁금하다. 楊 勳 道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