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본질을 “최선의 지도자감이라고 기대하여 모든 권력을 부여했다가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는 것 보다는, 최악은 아닌 지도자에게 부분적인 권력을 부여하고 그의 권력행사를 끊임없이 평가하여 여차하면 언제든지 갈아치울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 민주주의 특성”이라고 꿰뚫었다. 인간의 자유를 극도로 침해하는 전체주의 사회의 폐쇄성을 극단적으로 비판했던 포퍼는 민주주의의 요체를 제한적인 권력의 위임과 박탈의 연속으로 보았던 것이다.

 권력의 위임과 박탈의 주체는 당연히 민주적 소양을 갖춘 개인이며 시민이고 국민이다. 민주적 대의제도인 대통령제나 내각책임제(의회제)의 대통령이나 총리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으나 의회의 견제와 선거에 의한 국민심판으로 통제되기는 마찬가지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심판이 힘들다고 해서 제도를 변경해봐야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무소불위의 권력행사는 힘들기 마련이다. 민주주의의 기능적 수단으로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강조되는 건 이 때문이다.

 이런 전제를 생각한다면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문희상 당의장이 야당에게 '내각제 수준의 권력이양'을 제안하고 나선 것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제멋대로 팽개치겠다는 발상이니 위험천만이다. 권력이양의 전제로 '지역구도를 해소할 선거제도'를 내세웠지만 이는 정치권이 국민의사를 물어 합의해 추진해야 할 별도의 과제이지, 권력을 떼어주는 거래로 획득할 대상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여소야대 구도로는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걱정이다. 허나 국정이 꼬인 원인이 여소야대 때문인지 대통령과 여당의 능력때문인지는 국민이 선거로 판별할테니 걱정할 일이 아니다.

 우리 정치를 위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곳은 열린우리당이고, 한국정치를 정상으로 되돌려야 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지 싶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이렇듯 가벼이 여기니 국정이 안꼬이고 배기겠나.
〈尹寅壽·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