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올해 설 무렵에 여주교도소에서 복역중인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만났다. 선거법 위반으로 수감중인 이상락 전의원을 면회하려다 비서진이 큰 정치인의 면모를 보여주어야 한다며 이근안과의 상봉(?)을 주선했던 모양이다. 그가 누군가. 1985년 민청련 의장이던 김 장관을 국가보안사범으로 만들기 위해 전기고문 물고문으로 반병신 만들었던 사람이다.
김 장관은 “눈을 감을 때 까지 사죄하겠다. 무릎 꿇고 사죄하겠다”는 그를 보면서 말로는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왔다”고 했고 두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지만 “흔쾌하지는 않았다”는 솔직한 심경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겼다. 그를 생각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고문의 기억때문이었다고 한다. 고문이 한 개인의 인생 전체를 얼마나 철저하게 망가뜨릴수 있는지 엿볼수 있는 고백이요 증언이다. 그나마 대권후보로 까지 거론되는 정계 거목의 심경이 이러한데 아무런 보상없이 고문의 기억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심경은 그야말로 지옥일테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심심하면 출장고문차 찾았던 곳이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1987년 1월 14일 이곳 509호실에서 박종철 열사가 또다른 이근안들의 물고문에 목숨을 내놓았다. 무고한 젊은 생명을 절단내고 당시 경찰은 “'탁'하고 책상을 쳤더니 '억'하고 쓰러졌다”고 발표했다. 지금 생각해도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집단의 해명치고는 너무나 황당하다. 이런 황당한 집단이 국가안보를 내세워 국민에게 끔직한 폭력을 행사했던 시절이 있었다.
경찰청이 수많은 고문의 기억이 담겨있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인권기념관'으로 바꾸기로 했단다.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추모공간과 인권전시관을 만들고 인권보호센터를 입주시켜 경찰의 인권의식을 함양하는 '인권메카'로 만든다는 것이다. 잘한 일이다. 반공과 독재 이데올로기의 광기에 미쳐날뛰던 국가폭력의 시대를 증언하는 국민교육 현장이 되기를 바란다.
〈尹寅壽·논설위원〉
남영동 대공분실
입력 2005-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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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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