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그막에 기독교인이 된 할머니가 세례를 받게 되었다. “어머니, 목사님이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까'하고 물으면 '제 죄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세요.” 며느리가 신신당부를 했다. 세례문답이 시작되었다. “예수님이 누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할머니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우리 며느리 죄 때문에요.” 서양선교사의 설교를 듣던 다른 할머니가 펑펑 울었다. 예배 후 신도들이 물었다. “그렇게 은혜스러웠어요?” “아니, 선교사 파란 눈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얼마 전에 죽은 우리집 염소 생각이 나서….” 기독교 전래 초기에 유행했던 우스개 이야기들이다.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가 24일 교단 창립자인 최태용(崔泰瑢)목사(1870~1950)의 친일행적을 참회하는 고백문을 발표했다. 최목사가 창씨개명을 했고, 친일잡지에 '조선을 일본에 넘긴 것은 신의 뜻'이라는 글을 쓴 점 등을 회개하는 내용이다. 사실, 최목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1924년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최목사는 당시 병든 식민지 조선의 교회를 통박하는 글을 잇따라 발표한다. 기초교리조차 모르는 순진한 민중을 상대로 미국 직수입 근본주의 신앙과 물량주의를 전파하는 교회들을 향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결국 이단으로 몰린 그는 1935년 '기독교조선복음교회'라는 독립교단을 세웠다. '신앙은 복음적이고 생명적이어야 하고, 신학은 충분히 학문적이어야 하며, 교회는 조선인 자신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주체적 신앙과 교회의 사회적 사명을 선구적으로 주창하고 실천한 그였지만 일제 말기 폭압 속에서 친일 흔적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뜨거운 눈물이 있는 진실한 죄책고백 뒤에는 진정어린 용서와 화해, 희망 있는 진전을 기대합니다.' 교단 차원의 참회는 천도교에 이어 겨우 두 번째라고 한다. 기독교의 구원은 참회로부터 시작된다.

/楊 勳 道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