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86호 경천사지 10층석탑은 큰 수난을 겪었다. 1907년 조선에 온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아키는 조선 궁내대신 심상훈에게 이 탑이 탐난다고 말했다. 그러자 심은 “가지고 가시지요”라고 했다 한다.(매킨지, '한국의 비극') 아무리 일제 침략이 노골화된 시점이라 해도 이런 자가 일국의 대신으로 있었다고는 차마 믿고 싶지 않을 지경이다. 다나카가 무장 병력을 동원해서 개성 근처 부소산에 있던 이 탑을 실어가려 했을 때, 오히려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말리고 나섰다.(황현, '매천야록') 이 문화재강탈 사건은 영국인 기자 베셀(한국이름 裵說)에 의해 폭로되고 고종의 밀사 호머 헐버트가 일본 언론에 알림으로써 여론이 들끓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탑을 조선에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은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다. 결국 그가 조선총독을 거쳐 일본 총리대신으로 있던 1918년 탑은 돌아왔다. (그러나 수십년간 방치되어 있다가 1960년에야 복원되었고, 지금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그런데 무단통치의 대명사 데라우치가 탑 반환 쇼를 추진한 데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조선 병탄(倂呑)'에 지장을 주는 여론을 잠재워야 했던 것이다. 그는 오히려 조선 총독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많은 문화유적을 불법으로 약탈해갔다. 그의 고향인 야마구치 현립여자대학에는 그가 가져간 2천여점의 고분출토 유물, 1885여점의 서화, 432책의 귀중한 고서적이 있다.(한영대, '조선미의 탐구자들')
불교계를 중심으로 '조선왕조실록 환수운동'이 시작됐다. 바로 데라우치의 명령으로 1913년 일본 도쿄대학에 옮겨졌다가 관동대지진 때 불타버린 것으로 알려졌던 오대산 사고본 가운데 남아있는 책들을 되찾아오자는 것이다. 약탈문화재 반환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꼭 성사시켜야 할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다.
/楊 勳 道 (논설위원)
조선실록 환수
입력 2006-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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