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수선하다고들 한다. 꽃피는 춘삼월을 지독한 황사 때문에 날려
버리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오랜 가뭄으로 정신마저 혼미했던게 어제였는
데 이제는 마구 쏟아져 내리는 비도 그렇고, 북한 상선 영해 침공과 언론
사 세무 조사, 어수선한 정국 등 도대체가 나라 전체가 무언가에 홀려 이
리 저리 끌려 다니는 것 같다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린다. 세상이 도대
체 어떻게 돌아가는것인지 모두들 제 정신이 아니라는 자학과 비탄의 소리
도 들린다.
 외로운 58년 개띠세대
 우리 사회의 중추세력이면서 반면에 가장 불행하게 살았다는 '58년 개
띠' 전후 세대들 사이에서 세상걱정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들의 수런거림을 종합해 보면 그저 답답하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하루 세
끼 먹는거야 문제가 될게 없지만 애들 교육도 그렇고, 그래서… 어중간한
나이에 가정과 직장에 목이 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들이 조용
필이 부른 '킬리만 자로의 표범'이라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바람처럼 왔다
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고 푸념들이다. 빛나
는 불꽃처럼 살고 싶었는데 그것이 '흘러간 꿈'이 돼버려 차라리 '슬픔' 마
저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낙이라면 지금 이국땅에서 불꽃같은 삶
을 사는 박찬호 야구 보는 것이 유일한 재미라고 하는 '58년 개띠' 전후 세
대들이 의외로 많다.
 그에게서 '외로운 표범'의 모습을 본다. 작년만 해도 그에게는 그런 모습
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주심에게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예의바른 착한 동양
청년에 불과했다. 좌타자를 만나면 도망 다니다가 포볼을 남발하는 그런 투
수였다. 지난해 무려 18승을 올렸으면서도 '특급투수'가 아닌 그저 '잘 던
지는 투수' 로 폄하된것도 그때문이다. 누구나 부러워 하는 강속구는 물
론, 예리한 슬라이더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좌타자를 만났을
때 과감하게 그공을 던지지 못한 것은 나약한 심성때문 이었다. 자신이 던
진 공을 타자가 맞으면 어떻하냐는 그 소심함 때문에 상대팀 감독들은 아홉
명의 타자 중 일곱명을 좌타자로 배치해 그를 혼란에 빠뜨리곤 했다. 하지
만 올시즌 그는 변했다. 주심에게 모자를 벗어 인사를 하지 않는다. 잘 웃
지도 않는다. 덕아웃에서는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더 많다. 마
운드에 서면 턱을 치켜 올리고 이제 그 살벌한 정글속에서 믿을 것은 자신
밖에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터득한 그는 공 하나 하나에 집중한다. 예리한
슬라이더는 물론 무시무시한 강속구를 타자들의 몸 2㎝에 붙여서 던지는 자
신감으로 좌타자의 '밥'이었던 그에게 이제 좌타자는 그의 '밥'이 돼버렸
다. 팀의 에이스로서, 메이저 리그 8년차로서, 팀내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
엇인지 이제야 비로소 알게된 것이다.
 찬호가 힘이 되는 이유
 그러던 그가 허리통증으로 휘청거렸을때 머나먼 고국에서 그 모습을 보
던 58년 개띠 전후 세대들은 이구동성으로 '쓰러지지마, 일어날꺼야' 라고
중얼거렸다. 대한의 남아 기개 때문이 아니라 너마저 쓰러진다면 이토록 허
전하고 쓰린 마음을 밝혀줄 등불이 꺼지는 것이라고…. 마이너리그, 메이
저 초창기때 당했던 설움을 당당히 딛고 근성하나로 메이저리그 평정에 나
섰던 네가 여기서 쓰러진다는 것은 고난의 세월을 살아왔고 지금도 견디고
있는 58년 개띠 전후 세대들이 몰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느꼈는지도 모
른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어느날 386세대에게 치여 자신의 존재가 밀려나
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이 불쌍한 세대들에게 찬호의 화려한 변신이야 말
로 자신들이 지향해야 할 모습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찬호의 야구
를 보면서 58년 개띠 전후세대들은 '찬호야, 쓰러지지마, 우리도 일어날꺼
야' 라고 외치고 있다. <이영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