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자들과의 골프나 저녁회식은 더치페이(각자부담)로도 안된다', '이해
관계자들의 축·조의금을 받아서도 안된다'.
 일본정부 인사원이 공무원용으로 제작한 '국가공무원 윤리교본'의 한 구
절이다. 공무원들의 윤리무장을 위해 발간한 이 소책자는 일반판매 보름만
에 초판 2만부가 매진되는 이변을 기록중이다.
 이 윤리교본은 공무원이 이해관계자와 접촉할때 '해선 안될 것'과 '해도
되는 것'을 삽화와 함께 설명한 해설판이다.
 일본정부가 공무원윤리법 제정을 계기로 80여만명의 전공무원에게 배포
한 이 책자의 내용이 알려지자 기업체들이 사원교육용으로 구입하면서 매진
사태를 빚고 있는 것이다.
 윤리교본의 핵심 줄거리는 골프와 여행, 유흥이나 저녁 회식은 설사 더치
페이라도 어울리는 것 자체를 절대 금기시 하는 원칙 아래 온갖 경우를 시
시콜콜 적시해 놓았다.
 그래서 일본공직사회는 윤리법이 시행된(4월) 이후 '적발 1호'가 되지 않
으려고 극도로 몸을 사리고 긴장하고 있다.
 우리네 사정은 어떤가.
 가뭄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사정당국이 골프장 출입공직자에 대한 특별
감찰 활동을 벌여 뒷말이 그치지 않고 있다.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가 북한상선의 영해 침범 상황에서 골프를 친 사실도 드러나 말썽이
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무색하기만 하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은 청와대의 경고
선에서 적당히 눌러 앉아있을 요량인것 같다. 글쎄, 국민정서는 차치해놓
고 수하의 장병들을 어떻게 지휘할지 궁금하다.
 물론 기자도 골프를 친다. 사정당국이 대대적인 감찰활동을 벌인 지난 6
일 공교롭게도 기자가 찾은 골프장에는 무슨 연유인지 귀하신 분들의 모습
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평소 수행비서관을 앞세우거나 경호원까지 대동했던, 그렇게도 요란을 떨
던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은 웬일인지 보이지 않은 평온(?)한 하루였다.
 며칠이 지난 후에야 연유를 알게 됐다. 미리 정보를 입수한 각 부처에서
내부 단속을 단단히 했으니 골프장에 얼굴을 내밀 용감(?)한 공무원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감찰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군인들만 곳곳의 군
부대 골프장에서 적발돼 한숨만 쉬고 있는 형국이다.
 공직자들과 골프의 불편한 관계는 문민정부시절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
나는 재임중 골프를 하지 않겠다'는 발언에서 비롯됐다. 그 이후 사정당국
은 예외없이 공직자들의 골프장출입을 체크하기 시작했고 간혹 재수없이 걸
려든 공직자들이 옷을 벗거나 좌천되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 들어서는 '공무원들에게 치라 치지말라 간섭할 필요가 없
다'는 사실상의 해금령을 발표한지 2년이 지난 마당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현 정부들어서도 무슨 때만 되면 사정당국
의 단속소식이 전해져 주말부킹 취소소동이 일어나곤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골프가방에 자신의 이름대신 엉뚱한 이름이 자리한지는 고전이 되어버
렸다.
 골프대중화론의 문제를 떠나 이 스포츠가 권력층의 통치목적상 중요한 상
징조작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때마침 정부가 흐트러진 공직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대대적인 사정활동에
돌입했다고 한다. 국민적 정서를 감안하여 골프장 룸살롱 고급음식점 등 호
화사치업소에 대한 출입 자제를 당부하고 문제공직자는 엄중문책할 방침인
것 같다.
 기왕에 칼을 뺐다면 아예 공무원복무규정에 명문화 하거나 일본처럼 강
력 대처해주길 바란다. 고위층의 골프에 대한 기호나 사정당국의 자의적 판
단에 의해 법석을 떠는 일은 이제 사라져야 할 유산아닌가.
 “아마도 한동안 안나올겁니다. 그러다가 조용해지면 직급순위대로 또 나
오겠지요.” 골프장 간부의 말이 더욱 현실성있는 예견이다.
 또 다시 명단통보 소동도 겪을 것이고. <송광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