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이 되면 이런 결심을 간혹 만난다.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느
니 성을 갈겠다.” 더 심하게 정치를 욕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당대의
맹세'로는 약하다고 보는지, '월권'도 서슴지 않는다. “내 자식도 절대 정
치 안시킨다.” 한국정치와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해 항상 노심초사하시는
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평소 의식이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시민 가운
데 이런 의견이 꽤 많다.
 (범의 굴에 꼭 가야 하나)
 물론 이들 '보통'시민은 정치권의 관심대상이 아니다. 선거철이 다가오
면 정치권은 각계의 성공한 인사들 끌어들이기에 안간힘을 쏟는다. 상당수
인물이 '범 잡으러 범의 굴로 들어간다'는 자못 '비장한' 출사표를 던지고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그들 가운데 굴에 들
어가 범의 꼬리나마 끊었다는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다. 대신 참신했던 인물
이 이전투구 판에서 흙탕물 뒤집어 쓴 꼴은 적잖이 보았다. 딱한 노릇이다.
 지난달 하순 환경운동연합이 내년 지방선거에 전국에서 400명 가량의 후
보를 출마 시키겠다고 밝혔을 때, 복잡한 상념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던 것
은 아마 이 때문 이었을 것이다. 다른 시민단체에서도 지방선거 후보를 내
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소식은 머릿속을 더 엉키게 만들었다. 그들의 의도
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들의 결정은 내년 지방선거 판도에 어떤 영향
을 미칠 것인가? 예상대로 이 문제는 시민운동권 내부, 학계, 그리고 정치
권에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순수하게 원론적으로만 말하자면, 피선거권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
나 선거에 나설 자격이 있다. 또한 '정치가 모든 분야를 궁극적으로 결정한
다'고 볼 때, 앞서의 냉소적 정치혐오증에도 불구하고 모든 분야의 인사가
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더구나 투표 외엔 시민의 정치참여길이 막힌 탓에, 그동안 선출된 인물들
이 기득권구조를 좌지우지 하도록 내버려 두었기에, 오늘날 정치와 자치가
요모양 요꼴이라고 분개하는 시민이라면 직접 팔을 걷어부치고 정치판에 뛰
어든다고 해서 말릴 수 없다. 게다가 '풀뿌리 민주주의 훈련장의 살림은
내 손으로 직접 꾸려야 한다'는 명제까지 굳게 믿는다면 지방선거는 충분
히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는 냉혹한 현실에 입각한 반론과 맞닥뜨리지 않
을 수 없다. 우리나라 정치판, 특히 선거판이 그렇게 말랑말랑해 보이는
가? 일단 선거에 나선 이상 당선을 향해 뛰고 또 뛰어야 할텐데 그 실탄(?)
은 어떻게 조달할 텐가? 좋다. 남들이야 얼마를 쓰건 선거법규정을 준수해
가며 모범적인 운동방식을 선보인다고 치자. 그것 또한 선거에 나서는 중요
한 의도니까. 하지만 도덕성을 생명처럼 앞세워온 입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
은 기성 정치인들과의 버거운 싸움을 정말 감당해낼 자신이 있는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랴)
 게다가 내년 지방선거는 대선으로 가는 직통로다. 여야가 사생결단의 기
세로 달려들 선거인 것이다. 지금도 입으로는 '자치가 정치에 오염되면 안
된다'는 식의 논리를 펴면서도, 뒤로는 지역별 득실계산에 팥죽땀을 쏟고
있는 중이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총선당시처럼 '홍위병'이라든가, '권력에
눈먼 예비정당' 이라며 마구 공격해 댈 것이다. 정말 그러하다면 모르겠으
되, 아니라면 얼마나 억울할까. 그 과정에서 온 나라가 또 얼마나 시끄러울
까. 우리의 정치풍토상 시민운동은 자치나 정치와 본령이 다르며, 독자적
인 방식으로 권력을 견제하고 여론을 주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유럽
의 녹색당 쫓아가기엔 시기상조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답을 모르겠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
랴'인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인가. 어느 쪽이 누구나 성
을 갈지 않고도 정치에 발담그고 싶어지고, 아이가 원한다면 정치가로 키워
도 좋은 시대로 가는 지름길인지 앞으로 더 심사숙고해 봐야 할 듯하다.  <
양훈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