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정말 호랑이였을까. 어찌 보면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전
문가들의 의견도 둘로 나뉜다. 커다란 삵인가, 작은 호랑인가. 너무 더워
잠 못 드는 밤, 그 희미했던 화면을 거듭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조금만
더 선명했더라면…. 못내 아쉽다. 대구MBC가 청송 심산유곡에서 무인카메라
로 잡은 사진을 지난주 방영한 이래 전국적으로 호랑이 논쟁이 뜨겁다. 한
국호랑이야! 제발 살아 있어다오. 그 간절한 소망들이 새삼 느껴진다.
(우리 생태계의 희망)
우리나라 사람들의 호랑이 사랑은 유별나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아마도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동물로 호랑이가 1위지 싶다. 단군신화에 따르면 우
리는 엄연히 곰의 후예인데도 말이다. 오죽했으면 한국호랑이 복제시도를
다 할까. 지난 93년 북한에서 마지막으로 생포된 한국호랑이 '랑님이'의 체
세포를 복제해서라도 한국호랑이의 대를 이어보려는 노력이 지난해부터 진
행중이다. 이런 판이니, 청송 호랑이가 진짜로 판명된다면 그 기쁨이 오죽
하랴.
야생호랑이가 살아있는 생태계는 희망이 있다. 먹이사슬의 가장 꼭대기,
포식자(捕食者)의 우두머리가 생존하려면 그만큼 안정된 생태계가 필요하
기 때문이다. 멧돼지 노루 고라니 따위 짐승은 물론이고 머루 다래에 물고
기까지 잡아먹는 호랑이가 건재한 산야라면 우리의 미래는 믿어도 좋다. 그
동안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구석구석 찢고 파헤친 국토이건만 아직도 희망
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생태계 파괴의 속도는 늦추지 않으면서, 호랑이가 살아 있기를 기원하는
것은 '택도 없는 소리'다. 아니, 하늘의 벌을 받아 마땅한 염치없는 수작이
다. 무인카메라 앞에 나타났던 저 동물이 정말 우리 호랑이였기를 바란다
면, 이젠 어떤 명분이 있더라도 백두대간을 까뭉개는 일 따위는 멈추어야
한다.
호랑이는 한밤에 먹이를 찾아나서는 습성이 있다. 때로 그 거리가 100㎞
에 이르고, 평생의 활동반경은 400㎞나 된다고 한다. 한반도를 종횡으로 누
비고도 남는다는 계산이다. 청송의 동물이 정녕 호랑이일진대, 저 백두산으
로 부터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온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발길 닿
지 않는 곳이 없는 우리나라 밀렵꾼들의 행태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 가능성
은 더 높아진다. 무인카메라에 잡힌 영상이 호랑이 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또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멸종되지 않은 기상)
호랑이가 지난 50년간 '물샐 틈 없는' 휴전선을 어떻게 넘었는지는 모른
다. 지천으로 깔린 지뢰밭을 어떻게 피하며 남북을 오갔는지도 알 수 없
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눈을 좋아하는 호랑이가 하얗게 덮인 백두대간
눈밭을 헤치며 남북을 내리달리고 치달렸는지, 짙은 녹음 속에서 형형한 눈
빛으로 가파른 대치의 현장을 꿰뚫고 유유히 오갔는지. 그 모습, 상상만 해
도 무더위가 싹 달아날듯 유쾌하다. 다시 말하자면, '아직 멸종되지 않은
한민족의 기상'이 어리석은 인간들을 비웃으며 다시 한반도를 누비기 시작
했다는 뜻 아닌가.
“여우들이 들끓는 이 세상 제발 호랑이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함석헌
(咸錫憲)선생에게 공감하는 백성이 지금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 좀스럽고
치사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면서도, 지도자입네 행세하는 자들에게 우
리 호랑이의 포효가 다시 들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학자 연암 박
지원(燕岩 朴趾源)도 '호질(虎叱)'에서 호랑이의 입을 빌어 이렇게 호통을
쳤다. '함부로 남의 것을 착취하고, 훔쳐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며, 심지어
는 돈을 형이라 부르고, 장수되기 위해서 아내를 죽이기까지 하는 이 더러
운 인간들아!'
어짊과 옳음을 대변하는 한국호랑이는 입 더럽힐까 염려하여 그런 인간
은 오히려 잡아먹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호랑이가 돌아오는 날
그들은 단매에 고꾸라져 마땅하다.
오늘부터 각자 마음 속에 호랑이 한마리 제대로 길러 보자. <양훈도(논>
설위원)>양훈도(논>
내 마음 속의 호랑이
입력 2001-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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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0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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