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8년 11월에 있었던 국회 5공특위 일해(日海)청문회는 우문현답(愚
門賢答)에 진문기답(珍門奇答)이 쏟아져 나와 국민들의 큰 관심과 흥미를
끌었다. 이 청문회에서 당시 대통령에게 거액을 헌납한 한 중견기업인에게
모 국회의원이 물었다. “대통령에게 영수증을 써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기업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대통령에게 영수증을 써달라고 조를 수도 없
고 그럴 기업인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주고 영수증을 써
달라고 할 기업인이 있을수 있을까. 지금까지도 영수증의 생활화가 뿌리내
리지 못했는데 하물며 10여년전에 더구나 대통령에게 영수증을 요구하다
니. 우문우답(愚門愚答)이다.
영수증 문화의 정착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정부는 투명한 과세와
탈세방지를 위해 지난 70년대 후반에 금전등록기 설치 제도를 도입하고 영
수증 제도의 정착에 힘써왔다. 민간단체들도 최근까지 영수증 주고 받기운
동을 벌여왔다. 영수증을 주지않고 받지않는 것은 탈세를 조장하는 행위라
는 점을 강조했지만 별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들어 그 어렵던 영수증
문화의 정착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제가 바로 그것. 국세청은 지난해 1월부터 신용카
드 영수증 복권제를 도입, 매달 카드 영수증을 추첨하여 당첨된 사람들에
게 총 10억원이 넘는 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래서 지난해에 46만3천
명에게 모두 176억원의 상금이 돌아갔다. 올들어 6월까지는 52만명에게 95
억5천만원의 상금이 지급됐다. 여기다 신용카드 사용금액의 일정 부분을 과
세대상 소득에서 빼주는 카드사용액 소득공제 제도까지 가세했다.
이렇게 되자 소비자들은 이왕이면 현금보다 카드를 쓰자는 움직임이 크
게 확산돼 카드 사용이 급증했다. 신용카드 이용금액이 99년말 90조7천억원
에서 지난해 말에는 219조원으로 폭증했다. 이 바람에 지난해에는 2조원의
세수증대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이처럼 카드사용이 크게 늘어나자 자영업
자의 매출과 수입이 드러나고 이제까지 숨겨져 온 세금이 노출되기 시작했
다. 카드 매출액은 해당 카드회사를 통해 국세청에 전산자료로 통보되기 때
문이다.
최근 3년사이 종합소득세가 금액으로 두배 가까이, 납부 대상자로는 50%
정도가 늘어난 것도 신용카드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있다. 다시 말해 국
민들이 신용카드를 많이 사용할수록 자영업자들이 매출액을 숨기기 어렵게
되고 세금신고액도 그만큼 줄이기 힘들게 되니 소득세 납부가 늘수밖에 없
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봉급생활자를 세금내는데 있어서는 '봉'이라고 한다. 소득
이 '유리지갑'처럼 완전 노출돼있어 소득세는 물론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의 분담금을 에누리 없이 꼬박꼬박 낼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변호
사·의사등 고소득 전문직이나 자영업자들의 소득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어 봉급생활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금을 적게 내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
인 예지만 최저임금 수준의 소득을 신고하는 의사나 회사 말단직원보다 건
보료를 적게 내는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아예 건보료를 내지 않는 의사·약
사들도 있다고 보도된 바 있다. 이러니 봉급생활자들은 분통을 터뜨리지 않
을수 없다.
그러나 이제 샐러리맨들이 이러한 불공평과 억울함을 크게 고치고 풀 기
회가 왔다. 현금대신 신용카드를 적극 사용하면 된다. 상품을 사는 모든 곳
은 물론이고 각종 용역이나 서비스에 대한 대가도 카드로 지불할 수 있으
면 모두 카드로 지불하자. 카드회사나 국세청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불공평 과세나 불합리한 보험료 부담을 봉급생활자가 스스로 고치는데 제
일 효과가 큰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샐러리맨이 '봉'을 면하기 위한 자구책(自救策)으로 가장 현실적
인 방법이다. 정부 역시 카드지불의 확대는 물론 대만에서 시행되고 있는
일반 영수증의 복권제와 같은 정책개발이 있어야 한다. 봉급생활자의 '카드
파워'를 발휘할 때다. <구건서(논설위원)>구건서(논설위원)>
'봉'이 되지 않으려면
입력 2001-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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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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