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마치 나라 전체가 한탕주의에 빠져든
느낌이다. 7, 8월의 경마장, 경륜장에는 찌는 듯한 폭염에도 아랑곳없이 대
박을 꿈꾸는 사람들로 넘실거린다. 환호와 한숨이 교차하는 열광의 도가
니. 그들 손엔 예외없이 모두 경마표와 경륜표가 쥐어져 있다. 그곳에서 '
건전한 여가선용' 운운했다가는 몰매 맞기 십상이다. 놀라지 마라. 경마장
과 카지노를 입장하는 사람들이 무려 연간 1천500만명에 이른다. 이들의 매
출액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경마의 경우 98년 2조7천억원에서
99년 3조1천억원, 지난해에는 4조2천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3
조1천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공인한 폐광지역 카지노 때문에, 그 오랜세월
듣기만해도 우리들의 가슴을 아리게 했던 '정선아리랑'은 사라지고 '정선카
지노'가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눈을 감으면 아스라히 떠오르던 굽이치
는 강가. 하지만 이제 그곳에 그런 아름다움은 사라져버렸다. 잭팟이 터지
고 카드장이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하룻밤에 가산을 탕진해 쪽박 차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도 꾸역꾸역 사람들이 몰려든다. 모두 한탕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왜 한탕주의가 성행하는가
복권판매도 만만치 않다. 한여름 밤의 꿈을 빌미로 너도 나도 복권판매대
로 모여든다. 잘만하면 최대 40억원의 대박이 터진다는데 누가 이의 유혹
을 외면할 수 있을까. 여러 복권판매대를 돌아다니며 무려 1천만원어치 복
권을 사는 사람도 있다. 학교앞 구멍가게. 즉석식 복권을 열심히 긁고 있
는 아이들을 볼때면 가슴마저 철렁거린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복권은 모두
14종. 여기에 다음달 부터는 축구복표가 발행되고 정부나 공공기관이 주도
하는 환경복권, 바다복권, 보건복지부의 자선복권이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출정준비를 하고 있다. 가히 복권천국이다.
어디 이뿐인가. TV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자막으로 지겹게 뜨는 ARS퀴즈.
민간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공영방송에서 조차 무분별한 ARS퀴즈를
내보내고 있다. 얄팍한 상품을 내세워 말도 안되는 '생쑈'에 여념이 없다.
어찌 이지경까지 되었는가. 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일확천금을 노리며
한탕주의에 빠져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모두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확실
한 미래. 누구도 내 운명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막연한 불안감. 정치, 경
제, 사회 가릴 것 없이 마치 안주하지 못하고 떠있는 듯한 사회구조. 여기
에 소위 사회지도층인사들 사이에서 만연되어 있는 비리와 부패, 거짓말 등
은 국민들을 극도의 조급함 속으로 몰아넣는다. 벌어놓은 것 하나도 없는
데, 누구는 저렇게 잘 해 먹는데, 온몸을 부딪혀도 이 불확실한 미래를 견
뎌나가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한탕 밖에 없다. 정부가 앵무
새처럼 반복해 떠드는 미래에 대한 장미빛 비전보다 어젯밤 꿈속에서 보았
던 못생기고 더러운 돼지한마리가 사람들에겐 더 큰 위안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탕을 부르는 불확실한 미래
끗발 한번 잘 잡으면 인생이 변한다고 믿는 사람들. 아니 그걸 권하는 사
회. 누가 그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 준엄하게 이를 꾸짖을 원로도 없
고, 올바른 길을 걷는 것보다 지름길을 통해 목적지에 먼저간 사람이 영웅
이 되고, 힘겹게 한푼두푼 아껴 재산을 모은 사람보다 한탕으로 졸부가 된
사람이 더 추앙받는 사회. 그저 그렇게 이 사회는 굴러간다. 그러면서도
“세상이 다 그렇지…뭐”라며 돌아서서 즉석복권을 긁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의 서글픈 운명이, 이 사회의 암울한 미래가 자꾸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잘
못 굴러가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러면서도 헤어나올 수 없는 진흙탕에 빠
져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묻혀서 흘러가는 우리의 연약한 운명이 개탄
스럽다. <이영재(논설위원)>이영재(논설위원)>
나라 망치는 한탕주의
입력 2001-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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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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