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23일 오전 10시30분 한국은행 총재실….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전철환한국은행 총재가 국제통
화기금(IMF)차관 1억1천180만 SDR를 갚는 서류에 서명을 했고, 이 서류는
곧바로 미국 뉴욕 연준(FRB)과 시티뱅크 등의 한국은행 계좌에서 프랑스 독
일 아일랜드 그리스 쿠웨이트 등 5개국 중앙은행으로 송금이 됐다. 유럽 4
개국 중앙은행에는 유로화로, 쿠웨이트에는 디나르화로 입금됐다. 송금을
확인한 한국은행 국제국은 즉시 “IMF가 지정한 은행계좌에 다음과 같이
총 1억1천180만 SDR를 보냈으며, 이번 상환으로 IMF의 대기성 차관을 모두
갚았음”을 텔렉스로 통보했다. 이를 끝으로 외환위기 이후 IMF의 빚을 당
초 계획보다 3년 앞당겨 모두 갚은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 민족최대의 '치욕적인 사건'으로 까지 기록될만한 IMF체제
를 졸업했으니 얼마나 기쁜일인가. 온 국민이 다같이 좋아라하며 축제분위
기에 휩싸여야 할 이날, 우리는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다시한번 곱씹어
보아야 할 것 같다. 3년8개월 만에 경제주권을 되찾았으니 정부로서는 기념
도 하고 자축행사를 가질만한 일인데…. 환란에 의한 IMF신탁국가중 가장
먼저 '졸업장'을 받은 셈이니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질 만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 경제는 IMF 증후군이라 할 만한 최대의 난국에 빠져있는
게 현실이다. IMF졸업을 맞은 상당수 국민들도 깊은 회한과 감회에 젖어보
지만 왠지 가슴 답답함을 한없이 느꼈을 것이다. 왜 그럴까. 우리경제가 워
낙 대외의존도가 높은 탓에 미국과 일본의 경기가 나빠지고 환율과 국제유
가가 급등하면 몸살을 앓는 취약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국
민의 적극성과 인내심이라면 이 정도의 위기쯤은 끄떡없이 넘길 수 있다고
본다. 더 늦기전에 우리의 뒷모습을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
다. 우리가 왜 IMF의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까?. 직접적인 이유는
물론 외환위기가 금융 및 자본시장에 이어 기업으로 확산되는 연쇄작용을
일으키는 바람에 경제가 곤두박질친 때문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그러한 경
제적 원인의 배경에는 정치 사회 문화의 구조적 모순이 더 중요하다는 것
을 절실히 알게 됐다.
방만한 정부정책과 과욕에 눈이 멀었던 재벌의 과실, 고질적인 관치금융
의 폐해, 눈치보기에 급급했던 노동정책과 과격한 노사관계 등등이 이면에
자리잡은데다 정경유착의 산물인 정치권의 경제개입이라는 엄청난 독버섯
이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IMF관리체제하에 진행된 개혁프로그램도 경제논
리나 시장질서를 왜곡시킨 채 정치논리 우선의 관행과 관료주의가 사실상
지배함에 따라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더구나 우리사회에 만연해있는 적당주의 편법주의 연고주의 집단이기주
의 지역주의등 패거리 문화가 기승을 부리는 한, 부정부패와 사회적 부조리
가 판을 치는 한, 우리는 현 상황을 벗어나기 쉽지않을 것이다. 정치인들
이 개인적인 이득과 특권을 챙기는 한, 정치집단의 기득권 유지와 자기 중
심적 이익을 쫓는 한, 대권욕에 사로잡힌 정쟁에만 몰두하는 한, 국가 장래
는 밝을 수가 없을 것이다. 또 관료집단이 갖가지 핑계를 구실삼고, 개혁
을 지연시키고, 눈치보기에 급급하고, 복지부동하는 한 우리의 경제기반은
취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정부 정책만을 탓하지 말자. 남을 탓하는 고질병부터 스스로 고쳐
보자. IMF를 뛰어 넘은 위대한 국민답게, 다시 뛰는 한국인답게, 금 모으기
의 그때 그 심정으로, 뼈아픈 반성과 성찰의 자세를 가져 보자. 국가적 위
기학습은 결코 끝나지 않았음을 명심하자.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나는 무엇
을 할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 <송광석(논설위원)>송광석(논설위원)>
이제 정부만 탓하지 말자
입력 2001-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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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3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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