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자유분방과 낙천적기질 그 자체가 상징이었던 뉴요커들의 얼
굴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맨해턴의 그 아름다운 불빛도 이제 당분간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날의 참상을 생생하게 목격했던 자유의 여신상은 여전히
그곳에 서 있겠지만, '자유'라는 이름은 미국의 끓어오르는 분노앞에서 무
색해져 버렸다. 참사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이후… 이슬람교는 마치 악의 상징으로 떠 올랐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끓어오르는 분노로 가득찬 미국은 뉴욕참사의 배후에 이슬
람 원리주의자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하면서 그가 은신하고 있는 아프가니
스탄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 누구도 그가 배후가
아니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속에서….
 전쟁이후 발생할 후유증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는 세계 각국의 시각이 자국의 이해에 따라 큰 차
이를 보이는 등 자칫 지구촌이 친미세력과 반미세력으로 양분될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시간이 흐를수록 종교간의 갈등으로 빚어지는 양상
을 띠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은 의외로 크다. 참사이후 절정에 달했던 테러
에 대한 보복에 대해 미국내에서도 그 지지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도 보
복이후 발생할지 모를 상상하지 못할 후유증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
다. 미국의 분노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미국의 자제만을 촉구
하는 것도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전쟁 이후에
벌어질 갈등의 골이다. 미국이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라덴이 은신하는 지역
을 단기간에 분풀이 하듯 폭탄을 쏟아붓는거야 그 누구도 말릴수 없겠지
만, 자칫 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이슬람국가의 반발, 그로인한 보복의 악순
환은 어쩌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할 심각한 모습으로 변질될지도 모른다. 미
국에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이라크와 팔레스타인내의 급진세력은 벌
써 미국의 아프간 침공에 대해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태를 이슬람국가와 서방국가간의 갈등으로 몰고가는 서방언론의
태도는 극히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이슬람국가라고 모두 미국을 적대시 하
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슬람 모두가 반미감정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런 점에서 볼때 과연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미국의 논리가 100%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테러는 지구상에서 사라져
야 하고 이번 뉴욕참사의 피해가 상상도 못할 만큼 끔찍스러웠다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촌의 모든 이들이 우려하는 것은 섣
불리 매를 들다 '벌집'을 건드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라덴이 은신
하고 있다는 이유로 아프간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감행할 경우, 그래
서 자칫 종교분쟁으로 번진다면 미국 역시 이에 대해 자유롭지 못할것이 분
명하다.
 문명의 충돌, 인간의 광기
 미국은 지구상에서 경제적이나 군사적으로 초 강대국이다. 그 어느 국가
도 미국을 얕잡아 보거나 넘볼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지구촌의 경찰국가라고 자임하면서 세계 각국의 분쟁에 사사
건건 개입해 왔다. 지나친 과잉대응으로 죄없는 많은이들이 희생양이 되었
다. 리비아, 이라크, 수단 등 에서 미국의 폭격으로 인해 많은 인명 피해
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을 제외하곤 그들의 죽음에 대해 관심
을 보이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이슬람교도들 일부가 마음속에 미국에 대해
용서못할 분노를 담아두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번 사태
를 두고 문명의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하지만 그것
이 문명의 충돌인지 인간의 내면에 감춰져 있는 광기의 돌출인지 더 지켜
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날 이후… 인간의 광기가 필요 이상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 우린 그것이 두렵다. <이영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