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놀기를 좋아하던 기자는 유년을 시골에서 자랐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가방은 아예 툇마루에 집어던지고 마을앞 개울이나 앞산으로 달려간다. 동무들과 놀다 어둠이 깔릴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와 밥상머리에 앉는다. 허기진 배를 정신없이 채우다보면 영락없이 밥알을 떨구기 일쑤다. 워낙 배고프던 터라 그냥 밥을 먹고 있으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이녀석! 상에 흘린 밥알을 버릴 참이야.” 화들짝 놀란 아이는 제대로 씻지도 않은 손으로 얼른 밥알을 주워 먹는다. 행여 아버지의 추상같은 명(?)을 어기면 즉시 밥그릇을 빼앗기고 벌까지 선다. '이까짓 밥한톨이 뭐라고… 아버지는 너무하다'고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며 자랐다.
그러던 아버지도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그 아버지로부터 그렇게 야단맞고 자랐음을 커서야 알게 된다. 가장이 된 기자도 아들에게 똑같은 주문을 하고 살았다. 기자의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때의 일이다. 사건기자 시절이니 으레 새벽이슬을 맞으며 귀가한 내게 아내가 “○○일보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이가 상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기자를 닮아서인지 공부도 시원찮고 별 특기도 없는 녀석이 무슨 상을? 의아해하며 다음날 전화를 하던 나 자신, 너무도 기막힌 소식을 듣는다. 전국 초등학생글짓기 대회에서 녀석이 대상을 받게 됐는데, 제목이 '쌀 한톨' 이라고…(중략) 그리고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부는 내년부터 쌀 증산정책을 포기하고 추곡가도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올 연말이면 적정재고량 600만섬을 훨씬 넘는 1천만섬이나 남아돌 전망이기 때문이란다. 여기에 우루과이라운드 합의에 따른 쌀 의무수입 물량은 계속 늘게되어 있고, 2004년에는 WTO(세계무역기구)쌀 재협상에서 개방 폭은 더 확대될게 분명하다.
오늘의 상황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정부가 갑자기 충격요법을 동원한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다. 불과 몇개월전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만금 간척사업을 '식량 자급능력부족과 농지감소'를 내세워 강행키로 하지 않았던가. 그러더니 돌연 생산과잉으로 증산정책을 포기한다니, 자가당착인 것이다. 배신감으로 분노하는 농민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된다. 자칫 농업기반자체가 급속히 위축되는 사태가 빚어지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장기비전도 없이 냉·온탕식 정책으로 오락가락하는 정부는 스스로 국민의 불신만 키우는 꼴이다. 콩과 목화를 미국과 중국에 시장을 내준뒤 우리 생산기반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던 선례를 벌써 잊었단말인가.
쌀이 남아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청소년과 젊은층의 식생활이 서구식으로 바뀐 때문이다. 그런데도 군부대와 학교급식에는 2년이상 묵은 쌀을 쓰고 있다. 앞으로 이런 저질미는 과감하게 가공용으로 돌려 일반소비를 늘리는 것이다. 대신에 군과 학교에는 밥맛나는 좋은 쌀을 공급해보자. 입맛이 예민한 학생과 젊은이들에게 나쁜 쌀을 자꾸 먹이면 점점 더 밥을 기피하게 할 뿐이다. 미국처럼 자국농산물만을 원료로 사용토록 학교급식법 제정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학교급식업자들에게 정부의 지원금을 늘리는 것은 물론이다.
또 수백만명에 이르는 생활보호대상자들과 결식학생, 무의탁 노인 등 저소득층 문제를 남아 도는 쌀로 해결해보자. 그래도 남으면 인도적 차원에서 명분과 실리를 명확하게 한뒤 대북식량 지원도 검토해보자. 이미 차관형태로 쌀 30만t과 옥수수 20만t을 외국에서 사다가 북한에 주지않았는가 말이다. 물론 정치권처럼 즉흥적 발상에 의한 지원은 절대 안된다. 정말 쌀 농사만큼은 정부와 농민은 물론 전국민이 깊은 이해와 지혜를 모아야 할 사안이다.
-송광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