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때가 되면' 한번씩 조폭소탕작전을 벌인다. 경찰이 파악하고 있
는 우리나라 조폭은 199개파 4천153명이다. 고작? 그러나 경찰의 설명을 들
어보면 이해가 간다. 뒷골목 조무래기 주먹은 빼고, 이름이 알려진 큰 주먹
만 그렇다는 것이다. 산술평균으로만 따지자면 아무리 작은 도시에도 2, 3
개의 유명 폭력조직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적은 숫자가 아니
다.
더 큰 문제는 조폭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8년 경찰 통계상
으로는 조폭이 99개파 2천여명 수준이었다. 단 3년새 2배로 늘어난 것이
다. 왜 이렇게 급증했을까. 통계의 실수가 아니라면, 조폭은 그만큼 수지맞
는 '장사'라는 의미다. 그렇지 않고서야 경찰이 단단위까지 어깨 숫자를 세
고 있는 터에 이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동안 사회가
매우 어지러웠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조폭이 존재하는 이유)
하여튼 조폭은 어느샌가 우리 곁의 존재가 돼 버렸다. '핸드폰으로 삼행
시를 지어보겠습니다요, 형님.…폰단폰단 돌을 던지자' 따위 우스개의 주인
공이 되기도 하고, TV 드라마에서 단골 캐릭터로 설정되기도 한다. '친구'
'신라의 달밤' '조폭마누라' 등 빅 히트를 기록한 몇 편의 영화는 조폭을
우리의 친근한 '이웃' 쯤으로 부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심지어 '조폭신드롬'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
는 조폭이 버젓이 '장래희망'이 되는 판이다. 그러나 이 모든 현상이 과연
일각의 주장대로 대중매체들의 '조폭예찬' 때문일까. 분명 그것이 진실의
전부는 아닐 터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대중매체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
조폭적 심리', '조폭화 경향'을 예리하게 포착해서 상업적으로 팔아먹고 있
다고 보는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이용호게이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머니 게임'에 능한 사기꾼이 자신을
비호해 줄 정·관계 실력자들과의 연결고리로 동향출신 조폭을 이용했다.
여운환씨가 로비자금 20억원을 중간에서 꿀꺽했든 안했든 조폭이 '다리'로
나선 사실만은 명백한 사실로 드러났다. 사이비 기업인-조폭-정치인 사이
에 황금의 '트라이 앵글'이 성립한 것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을까. 정·경·폭의 삼각유착은 과연 이용호게이트
가 처음이고, 유일한 사례일까. 전국의 골프장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
한 각계 인사들이 조폭들과 수시로 골프를 치러다닌다는 캐디들의 증언은
괜한 헛소리고, 중상모략일까.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을 하건 크게 벌이고
성공하려면 최소한 한다리 건너서라도 폭력조직 하나쯤 알고 있어서 나쁠
게 없다는 건 공공연한 상식 아닌가.
(우리 마음 속의 폭력배)
평범한 사람들도 풀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솔직히 들키지만 않는
다면 조폭을 동원해서라도 해결하고 싶다는 발상을 하는 정도까지 이르지
않았는가. 윤리적으로 그래서는 안되는 줄 모르지 않으면서도 속터지는 세
상 누군가 속시원히 까부수어 주기를 은근히 기다리지 않는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법과 주먹 사이의 경계가 아예 허물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정의와 힘, 의리와 패거리의식, '머니 게임'과 경제가 뒤죽박죽으로 뒤엉
키고, 보스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 충성과 혼동되는 사회에서 조폭이 설치
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폭력으로 먹고사는 집단이 성실한 직업인으로 받
아들여지는 도착증세 마저 나타나는 것이다. 어차피 어떤 판이고 땀흘리지
않고 큰 돈 먹는 놈이 최고가 되는 한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모
른다.
검찰과 경찰이 지난주 폭력조직 소탕작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조폭들
의 활동이 위험수위를 넘어서, 이제는 합법적인 영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했
다는 것이다. 백번 잘하는 일이다. 더이상 불법이 법을 능멸하도록 허용해
서는 안된다. 이왕 칼을 뽑은 바에는 확실하게 뒷마무리를 해 줄 것도 당부
해 둔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조폭을 발본색원하고 싶다면 우리 내부에 자
리잡은 조폭심리, 조폭경향 먼저 도려내야 하지 않을까. <양훈도(논설위>
원)>양훈도(논설위>
조폭 닮은 사회, 사회 닮은 조폭
입력 2001-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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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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