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는 사람들의 이름과 연락처 등을 적은 명부를 말한다. 리스트라면
연쇄반응식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쉰들러 리스트'. 미국의 스티븐 스필
버그가 만든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92년말 개봉되자 전세계에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쉰들러 리스트는 2차대전중 나치독일의 유태인 학살 과정에
서 쉰들러가 구해낸 유태인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말한다.
2차대전중 독일 점령하의 폴란드에서 독일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는, 나치
가 어린이까지 무참히 학살하는 장면을 보고 유태인들을 구하기로 결심한
다. 쉰들러는 독일군에게 뇌물을 주고 유태인들을 자신의 군수공장에 위장
취업시켜 1천300여명을 구해낸다. 이들에게 쉰들러의 군수공장 취업자 명단
에 이름이 오르는 것은 곧 생명을 보장 받는거나 마찬가지였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우리나라에도 수입, 상영되어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영화였다. 이 영화가 소개된 이후 우리나라에는 리스트라
는 말이 빈번히 매스컴에 오르내리게 됐다.
쉰들러 리스트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6·25동란을 겪은 우리에게 각별
한 감동을 주는 '존슨 리스트'도 있다(리더스 다이제스트 97년 3월호 소
개). 1950년 7월 한국전에서 북한군의 포로가 된 미군병사 웨인 조니 존슨
이 수용소에서 목숨을 걸고 죽은 전무들의 이름을 적은 명단이다. '존슨 리
스트'에는 수용소에서 죽어간 496명의 죽은 장병들의 이름과 부대명, 사망
일자까지 기록돼 있다. 존슨은 북한 경비병들이 버린 담뱃갑이나 학교건물
벽에서 뜯어낸 벽지에 몽당 연필로 3년여에 걸쳐 이름들을 기록했다. 갖은
우여곡절과 위기를 넘기고 존슨은 이 명단을 숨겨 갖고 포로교환을 통해 귀
국했다. '존슨 리스트' 덕분에 실종자로 처리돼온 많은 장병들의 정확한 사
망장소와 날짜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군당국이나 유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많은 도움과 고마움을 준 리스트였다.
이처럼 외국에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리스트가 많다. 그런데 우리 매스
컴에 오르내리는 리스트는 부정과 비리에 연관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권력형 비리사건이 터질때마다 리스트가 문제가 돼왔다. 문민정부때 한보그
룹 사건과 관련된 '정태수 리스트'가 대표적인 예다. 정씨로부터 돈을 받
은 정치인 30여명의 명단이 공개돼 우리사회를 발칵 뒤집어 놨다. 99년 2월
에는 대한생명 최순영회장이 구속되면서 '최순영 리스트'가 등장했고 '그
림 로비' 의혹설 속에 최회장 부인인 이형자씨의 리스트가 나돌기도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자유당시절 댄스홀을 무대로 수많은 여성들을 농락한
플레이보이 박인수의 리스트, 공화당 시절 고급요정의 단골고객 이름이 담
긴 '정인숙 리스트'도 있었다.
최근 우리사회를 뒤흔들었던 '이용호 리스트'도 같은 예다. 주가조작 등
혐의로 구속된 이용호씨가 몇해전부터 특별관리해 온 정·관계인사와 검찰
간부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기록된 명부다. 이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있는 권
력기관의 인사들은 이씨의 로비를 받았거나 이씨 비리사건에 직·간접으로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혹을 받았다. 이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조사를
받고 비리가 드러난 사람도 있다. 이렇게 보면 '이용호 리스트'는 사람잡
는 리스트라 할 수 있다. 사람을 살리는 외국의 리스트와는 대조적이다.
마침 미국의 아프간 공격 뉴스에 가려 이제는 사회적 관심이 크게 줄었
다. 미국의 테러보복전쟁이 없었다면 이 리스트는 우리사회에 큰 혼란을 주
었을지 모른다. 특히 '이용호 사건'은 몇억에서 몇십억원의 돈이 푼돈처럼
오가고 사기로 몇백억원을 손쉽게 버는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매
달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서민들의 '살맛'을 잃게 했다. 무슨무슨 '게이
트'도 많고 누구누구의 '리스트'도 많은 나라 대한민국. 이민 가려는 사람
들의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구건서(논설위원)>구건서(논설위원)>
사람잡는 리스트
입력 2001-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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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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