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서울 예술의 전당이 소송을 하나 제기했다. '의정부 예술의 전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예술의 전당'은 이미 자신들이 상표등록을 한 고유명칭이므로 유사기관에서 같은 명칭을 쓸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2년전 청주시가 시립공연장에 '청주 예술의 전당'이라고 이름 붙였다가 서울측의 항의로 '청주문화예술회관'이라고 간판을 바꾼 전례도 있었다. 그러나 의정부시는 '예술의 전당'은 상표가 아니라 '업종개념'이라고 맞섰다.
소송은 잠깐 동안 전국 문화예술계의 화제가 됐다. 누구 말이 맞는가. 한국의 대표적 공연·전시공간 '(서초동) 예술의 전당'의 '독점권'을 인정해야 하는가, 아니면 누구의 전유물도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되는 '문화예술'의 다양한 '전당'들을 장려해야 하는가. '의정부 예술의 전당'은 그렇게 '표절시비로 인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의정부시의 작명논리가 절묘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의정부 예술의 전당은 지난 5년간 520억원을 들여 지어졌다. 지방도시로서는 적지않은 문화예술 '투자'다. 하지만 전국 자치단체들이 '문화의 시대가 왔다'며 서둘러 세운 '그저 그렇고 그런' 행정적 성격의 문예공간의 하나라고 치부될 가능성 또한 없지 않았다. '우리도 문화도시'라고 자랑하고 싶어 겉만 번듯한 건축물을 지어놓았을 뿐, '소프트웨어'를 들여다 보면 '글쎄'라고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시설이 어디 하나둘인가. 그러나 의정부시는 이름만 잘 짓는 게 아니었다.
의정부시는 초대 관장을 발탁하는 과정에서도 앞서 나갔다. 처음부터 공채를 통해 외부전문가 구자흥(具滋興)씨를 영입한 것이다. 이런 '외곽기관'의 장 영입은 으레 지방의 정치적 역학과 행정적 배려에 의해 '임명'되는 관례는 보기좋게 뒤집어졌다. 구씨는 한국베세토(BESETO)위원회 사무총장이자, 1999년 밀레니엄축제 'DMZ2000-호랑이는 살아있다'와 2000년 아셈경축 한중일 3국합동공연 '춘향전'을 기획한 문화전문가다.
구관장의 영입 또한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4월6일부터 30일까지 펼쳐진 의정부 예술의 전당 개막공연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뮤지컬 '명성황후'와 국립발레단의 '지젤'을 비롯한 일련의 무대에 대한 관객의 호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경기북부는 물론이고 노원 도봉 등 서울북부지역 주민들까지 몰려왔다. 한강이북의 '문화갈증'이 얼마나 심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후 7개월여. 의정부 예술의전당은 잇따라 '대박'을 터뜨렸다. 서초동 쪽이 무게와 품위에 치중하는 반면 의정부 예술의 전당은 초장부터 과감하게 대중적인 문호를 넓혔다. 인순이·이은미의 콘서트가 성황리에 치러졌고, 악극 '무너진 사랑탑아'도 올렸다. 그동안 소외됐던 지역 연극·미술인 들에게도 문을 활짝 열었다. 급기야 서초구 예술의 전당과 의정부 예술의 전당은 '선의의 경쟁관계'라는 기사가 등장할 정도가 됐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로 서울과 의정부가 어디 상대나 되나. 천문학적인 '공익자금'을 들여 지어졌고, 연간 2천회의 공연·전시에 관람객이 200만명이나 다녀가는 우면산 예술의 전당. 올해 한국건축문화대상에 입선할 만큼 '이쁘게' 지어졌고, 내년분까지 대관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지만 아직은 '걸음마'를 뗀데 불과한 의정부 예술의 전당. 정말 '다윗과 골리앗'이다.
의정부가 서울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엔 부족한 점이 아직은 너무 많다. 지금의 각광도 '개관초기 프리미엄'일지 모른다.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모델을 찾느냐는 숙제도 있다. 하지만 '지역문화의 해'에 이만큼의 결실을 이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이름 소송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그래도 '예술의 전당' 얘기가 나오면 “어디? 서초동? 의정부?”하고 되물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의정부시민들은 좋겠다.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