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입시한파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언제부터인가 대입 수능시험일이면 포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자 '입시한파' 또는 '수능한파'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지난주 수능시험일인 7일도 대부분 지역의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예년 기온보다 몇도씩 낮은 추위가 닥쳤다. 신통하게도 '입시한파'가 재현된 것이다.
입시한파말고 대학입시철이면 또하나 어김없이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입시생을 둔 어머니들의 기도와 불공드리는 모습. 전국의 사찰과 이름난 산의 마애불 앞에는 아들 딸이 시험 잘 보기를 비는 어머니들의 지극 정성을 볼 수 있다. 철야기도는 보통이고 백일기도까지 드리는 어머니들도 적지않다.
이러한 어머니들의 모습에서 대입 시험의 치열한 경쟁과 절박함을 엿볼 수 있다. 수험생 못지않은 학부모들의 정성을 보고 어느 외국인은 이렇게 평하기도 했다. “미국인의 눈에는 한국의 부모들은 거의 미치기 직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입시철에 한국의 어머니들이 학교교문에 서서 자식이 시험을 잘 치기를 비는 모습은 미국에서라면 극단적인 일로 간주될 것이다.”
이렇게 수능시험의 에피소드를 얘기하다보니 얼마전 친구인 T교수와 저녁을 하며 나누었던 화제들이 떠오른다. T교수는 우리나라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최고의 명문 국립대에 재직하고 있다. 그런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한 수재들의 엉뚱한 언동을 보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한다.
T교수는 몇달에 한번씩 연구실 대청소를 한다. 지난 가을에도 대청소를 하던 날, 몇몇 학생들이 이를 보고 청소를 돕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총채를 든 한 학생이 서가의 먼지를 턴다며 하는 짓이 이상했다. 총채로 터는 것이 아니라 빗질하듯 책위를 총채로 미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진 T교수는 학생에 물었다. “이제까지 총채질하는 것을 못보았나.” 못보았다는 대답이다. 설사 보지못했다 해도 총채를 들면 자연히 털게 마련인데…. T교수는 총채질 시범을 하면서 혀를 찼다.
T교수가 또하나 못마땅해 하는 것은 학생들이 인사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연구실에 왔다가는 학생들이 나가면서 선생님에게 한다는 인사말이 대부분 “수고하십시오”라는 것이란다. 그럴때마다 T교수는 학생을 불러세워 훈계한다는 것이다. “수고하십시오”라는 말은 예를 들어 관청의 민원창구나 동직원에게 일을 보고 나갈때나 쓰는 인사지 사제간에 학생이 선생님에게 하는 인사말은 아니라고 말해주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에 또 찾아 뵙겠습니다” 등등 인사말을 가르친다고 했다. T교수는 총채질 하나 제대로 못하고 인사말도 확실히 모르는 수재들을 기른 것은 부모세대들 모두의 책임이라고 한탄했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면제되는 우리가정, 우리 사회 탓이 크다고 했다. T교수는 “공부면 다냐”면서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안타까운 것은 '취업대란'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청년 실업자들의 어깨처진 모습들이다. 우수한 대졸 청년들이 몇십번씩 입사시험에 낙방하거나 서류전형도 보기 어려운 현실에서 취업을 위해 헤매는 광경들이 보도될 때마다 애처롭고 가슴이 아프다. 부모님과 가족들, 주변 사람들의 이런저런 고생과 희생을 감수하고 일류대학에 들어갔지만 졸업하고 일자리를 못찾고 갈데가 없는 사회를 대졸 실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들이 “공부하면 뭐하나”며 자포자기하거나 현실을 원망하게 된다면 보통일이 아니다. 이런 우울한 사회를 만든건 이들 청년실업자들이 아니다. 우리사회 각분야의 지도층과 기성세대들의 책임이 크다. “공부면 다냐”고 한탄하는 어른들은 “공부하면 뭐하나”하는 청년들의 원망과 냉소를 귀담아 들어야 할 때다. <구건서 (논설위원)>구건서>
공부하면 뭐하나
입력 2001-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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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1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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