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연시에는 값비싼 모피코트에 귀금속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상류사회 부인들의 모습을 호텔이나 골프장에서 유난히 자주 볼것만 같다. 이제 외제차도 싸지고, 양주값도 내리고, 골프도 낮은 값에 즐길 수 있다니 좋기만 하단다. '돈 많은 사람'들이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느라 애써 참아오던 터에 과소비를 해도 좋다는 '정부보증'이 발표되었으니 얼마나 신명이 날까. 약삭빠른 상인들은 기회를 놓칠세라 갖은 방법으로 충동구매를 자극시킬 게 뻔한데, 이 참에 짓눌렸던 졸부들의 씀씀이 행각은 짐작이 안될 만큼 가히 폭발적일 것이라고 본다.
특소세 인하소식이 전해지자 자동차 대리점은 물론 가전업계와 귀금속상 모피점에 문의전화가 연일 쇄도하고 있다는 보도다. 더구나 특소세 인하 적용시한이 내년 상반기로 한정돼 그 이후에 구매를 계획했던 수요까지 앞당겨질 판국이다. 자칫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가수요현상마저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정부의 경기 부양책은 감세뿐이 아니다. 소위 재정의 경기 조절기능을 한껏 살려보려는 방안도 있다. 예산을 조기에 집행해 시중에 돈을 풀고 법인세율을 낮춰 기업들로 하여금 투자를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이같은 일련의 정책들은 교과서적인 경기 부양책으로 나름대로 일리는 있다.
그러나 곰곰 따져보면 감세 정책이 달콤하다고 해서 덥석 삼켰다가는 비싼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이치를 위정자들은 너무 간과하는 듯 하다. 세금을 덜 내면 국민들로서야 일단 좋다. 하지만 감세의 경기진작 효과가 대단치 않다는 반론은 접어둔채 '우리가 더 세금을 내려준다'는 식의 선심경쟁 기미까지 보이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당정의 감세바람은 따지고 보면 야당의 법인·이자소득세율 감세 공세에 대한 맞불 성격이 짙은게 사실이다. 이제는 아예 정부가 나서 특소세에 이어 법인세와 이자소득세율도 내릴 태세다.
건전재정과 재정적자 축소를 외치던 정치권이 갑자기 감세경쟁으로 치닫는 작금의 현상은 표리부동이다. 특히 야당은 내년 세출예산을 줄여야 한다며 정부를 질타하고 대책을 요구하던 모습이 오간데 없어졌으니 이율배반 아닌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심성으로 세금을 깎아주는 데 진력하다가 재정적자만 늘고 정작 정부가 써야 할 돈을 못쓰면 어쩔 것인지 되묻고 싶다.
만약 정부 의도보다 세수가 더 많이 줄어든다면 어떻게 할건가. 누군가 반드시 메워야 할텐데, 그것은 다름아닌 국민의 몫이 될 게다. 내구소비재와 양주를 즐기는 사람들의 세금까지, 아무관련도 없는 죄없는 서민들이 졸부들의 몫을 대신 내야 하다니… 이것은 이른바 수익자부담 원칙에도 엄연히 어긋나는 일이다. 세금은 물어야 할 사람이 물어야지 그 원칙이 깨지면 조세저항이 일어날 것은 자명하다.
특소세 인하와 폐지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는 사치품으로 분류됐지만 이제는 일상용품이 된 품목도 적지않다. 과거 특소세를 내려주거나 폐지해도 유통업자의 이익만 늘려주는데 그쳤던 점을 유념했어야 한다. 더욱이 내년의 세수부족액이 약 5조~8조원에 이르리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고 보면 감세경쟁은 좋아만 할 일이 못된다.
그렇지않아도 일부 계층의 고가품 선호와 충동구매 심리로 밀수가 끊이지 않는 우리로서는 이들의 과소비를 지켜보아야만 할 처지 아닌가. 수천만원짜리 골프채가 날개 돋친듯 팔리고, 억대에 이르는 모피코트와 외제자동차가 폭발적 수요를 감당치 못할 수도 있다. 귀금속과 녹용 로열젤리는 또 어떠한가. 이런 고급 사치품이 많이 팔린다고 서민생계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사치성 소비재 판매가 늘어난다고 국내 경기가 과연 살아 날것인지? 이도저도 아닐 경우 누가 책임질 것인지? 오히려 특소세가 지닌 소득재분배 기능만 약화시키고 계층간의 위화감만 더욱 가속시키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송광석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