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래시계'를 다시 보았다. 귀에 너무 익은 서글픈 주제곡, 빠른 장면 전환, 의미심장한 대사 한마디 한마디, 95년에 방영된 드라마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들이 신선하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보다 일곱살이나 젊은 배우들의 앳된 모습을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말없는 젊은 오빠 이정재, 카리스마가 넘쳐나는 최민수는 여전히 멋있고,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었다는 고현정의 젊음이 눈부시다. 대쪽 같은 검사 역을 맡은 박상원의 연기도 전혀 나무랄 데가 없다.
태수, 우석, 혜린, 재희 이름 하나 하나가 전혀 낯설지 않다. 70년 말부터 80년 중반까지 한국의 격동사를 다룬 드라마. 쉬쉬했던 80년의 광주와 삼청교육대가 부활하고, 한국정치이면사에 도사리고 있는 조직폭력배의 세계를 다루었다고 해서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 그래서인지 불과 1년전 방영된 드라마 재방송을 보아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럽지만 다시 보는 모래시계는 지금 막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처럼 펄떡거린다. 왜 그럴까. 왜 이상하지도 어색하지도 촌스럽지도 않을까. 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왜 다시보는 모래시계에는 낯설음이 전혀 없는가. 답은 아주 간단하다. 시기만 틀릴 뿐 판박이 찍듯 지금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과 전혀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모래시계를 보면 지금의 우리 사회를 거울속 들여다 보듯 한눈에 들어온다. 모래시계가 끝난 7년후 지금의 대한민국.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지만 작금의 상황이 모래시계를 그대로 재현한 모습이다. 그래서 드라마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그냥 가슴에 묻어둘걸 괜히 보았다는 후회감과 탄식이 쏟아져 나온다.
자식처럼 키운 재산을 놓치기 싫었던 카지노의 대부 윤회장. 권력에 엄청난 로비자금을 쏟아 붓고도 정권에 대항한다는 이유로 몰락하는 그가 요즈음 인구에 회자하는 ‘○○○게이트'와 어쩌면 그렇게 똑 같은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윤회장이 만든 이른바 ‘윤회장리스트'도 지금 온통 세상을 들쑤셔 놓고 있는 ‘진승현리스트'와 너무나 꼭 빼 닮았다. 카지노를 두고 조직폭력배 태수와 종도의 싸움. 권력 상층부의 위세 앞에 나약하기 이를데 없는 젊은 검사 우석의 좌절은 불과 얼마전, 아니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지 모를 조폭과 정치권의 결탁, 만신창이가 된 공권력의 허약함 바로 그 자체다. 드라마속의 안기부장이 국정원 차장으로, 카지노가 벤처기업으로 바뀌었을 뿐 타락한 권력의 실상은 전혀 다를바 없다.
모래시계는 공영방송이 아닌 상업방송에서 시청률을 노리고 만든 그저 평범한 드라마였다. 물론 작가가 나름대로의 사명감을 갖고 대본을 집필했겠지만 누가 뭐라고 하든 모래시계는 그저 흥미와 재미를 주기 위해 만든 드라마에 불과하다. 그런 흥미위주의 드라마, 무려 7년전에 방영됐던 그 드라마가 왜 지금 어지럽게 돌아가는 이 세상과 딱 맞아 떨어져야 하는지 그저 개탄스럽다.
모래시계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드라마 내용 같은 저런 세상은 단지 옛날이야기일뿐 다시는 재현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 오래된 필름을 볼 때 “그래, 맞아 저때 저랬어”처럼 잊어버리고 싶은 시절을 절묘하게 자극했던 연출력. 하지만 그런 암울한 시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쟁취한 민주화에 대한 희열, 그런것들이 복잡하게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치 모래시계의 재방송을 보듯 반복되는 현실은 우리를 경악스럽게 만든다. 반드시 지워버려야 했을 구태의연한 그시절로 다시 회귀하려고 하는 작금의 정치 상황은 그래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모래시계가 시대를 초월한 불멸의 명작인지, 아니면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려고 발버둥치는 정치권이 아둔한건지 그에 대한 대답은 후세에 맡기자. 다만 먼 훗날 모래시계를 다시 보게될 때 이제 제발 저 드라마에 공감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이영재 (논설위원)>이영재>
똑같구나, 똑같아
입력 2001-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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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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