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에 수염도 안 난 아들녀석이 요즈음 TV 프로 '엑스파일'에 푹 빠져 있다. 지상파에서 방영하는 최신작은 물론, 몇 개의 케이블방송에서 재방영하는 프로에 이르기까지 1주일에 서너편씩 쥐잡듯이 섭렵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하면 눈만 껌벅거리는 녀석이 엑스파일을 볼 때면 반짝거리는 눈빛을 하고 옆에서 뭐라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어느날 녀석은 아주 심각하게 자신은 엑스파일의 주인공 멀더와 스컬리 처럼 FBI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자못 진지하게 '진실을 찾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과연 우주인이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불가사의하게 일어나는 사건들의 진실은 무엇인지 FBI 요원이 되어 밝혀내겠다는 것이다. 어의가 없어 그건 드라마에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이미 녀석은 그 길로 가야겠다고 내심 작정을 한 모양이다.
장장 9년동안 200여편의 에피소드를 내보냈던 엑스파일이 오는 5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는 소식이다. 멀더역을 맡았던 데이빗 듀코브니가 중도하차 한 이후 시청률이 떨어지고 편당 400만달러에 육박하는 제작비를 제작사인 20세기 폭스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프로가 처음 방영되었던 90년대 중반 전세계는 엑스파일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자연의 섭리대로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 그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멀더와 스컬리, 반대로 그 진실을 은폐하려고 하는 정부 고위층의 음모, 알 듯 모를듯한 결론. 멀더의 몽환적인 분위기. 이런 것들이 어우러진 컬트드라마 엑스파일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각 나라마다 '엑스파일 신드롬'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결론이 분명하지 않은 이 프로에 열광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래서 그것이 명쾌하게 밝혀지면 사회사가 정확히 해독된다는, 즉 대중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엑스파일이 중요한 키워드 역할을 할 정도였다.
엑스파일이 동호회가 만들어질 만큼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던 것은 제작자들이 프로그램 여기저기에 숨겨놓은 애매모호한 코드 때문이다. 퍼즐찾기 같은 그 코드란 다름 아닌 '진실'이다. 난해한 암호를 풀 듯이 드라마 속에는 교묘하게 진실이라는 열쇠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 였을까. 제작자들은 이 프로를 방영하면서 '진실은 바로 거기에 있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하지만 그 진실의 실체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최근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묘한 분위기를 보노라면 미안하게도 엑스파일을 보는 것처럼 흥미만점이다. 어딘가에 분명 진실이 숨겨져 있지만 그것의 실체가 애매모호하기 이를데 없어서 신문기사를 아주 꼼꼼하게 읽어야 할 정도다. 한국 최고의 공권력이라는 검찰조직을 일시에 와해시킨 일련의 사태들도 그렇다. 뭔가가 있는데, 이 비리의 실체가 분명 있을 것 같은데 진실은 아직까지 '거기'에 있을 뿐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어떤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음모같기도 하고, 아주 단순한 사기사건 같기도 하지만 그 암호를 해독하지 못한, 아니 오히려 사건을 꼬이게만든 검찰은 국민들 앞에서 엄청난 치욕을 당해야만 했다.
지금 '차정일 특별검사팀'의 인기가 '짱'이다. 일부에서는 '차정일 신드롬'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난다 긴다는 머리좋은 검사들로 꽉 들어찬 검찰조직이 해결하지 못한 일들을 마치 이들은 마법사처럼 하나둘씩 풀어나간다. 진실이 밝혀질 때마다 국민들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면 할수록 차정일 특검팀에게 쏟아지는 박수소리가 거세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게 아니다. 그저 진실이 무엇인가 알고 싶을 뿐이다. 그 진실을 찾기 위한 특검팀의 노력에 국민들이 공감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도 아들 녀석은 늦은 밤 TV앞에서 엑스파일속에 감춰져 있는 진실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썩일 것이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지못해 좌절에 빠진 멀더와 스컬리에게 연민마저 느끼면서 녀석은 반드시 FBI가 되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