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지났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다.
나이야 이미 해가 바뀌면서 싫든 좋든 누구나 한 살씩 늘어났다. 하지만 설날 떡국을 먹어야 나이 먹은 것을 실감한다고 노인들이나 음력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겐 역시 설날이 지나야 한다.
특히 이번에 나이를 한살 더 먹은데 따르는 감회가 남다른 계층이 있다. 64세에서 65세가 된 분들이다. 65세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들이 노인층으로 분류하는데 기준이 되는 나이다. 65세 미만이면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생산연령층(15~64세)이고 65세부터는 일단 생산활동에서 제외된 계층으로 간주된다. 이른바 실버세대다. 노인으로 사회적 대접이 달라진다. 정부의 경로연금 수급대상자가 될 뿐아니라 지하철의 무료승차, 국립공원 등산로 입장 무료 등 혜택도 받는다.
우리는 고령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들의 노익장(老益壯)사례를 들어 새로 노인계층에 합류하게 된 분들을 위로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작곡가 베르디가 명곡 아베마리아를 작곡한 것은 85세때였다. 문호 괴테는 칠순에 파우스트를 완료했으며 아데나워는 88세때 서독의 수상을 지냈다 등등. 그러나 이러한 인물들의 활동은 뛰어난 건강과 정신력, 특출난 능력을 구비한 위대한 인물들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반면 평범한 노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이 최근 국내에서 자주 들리고 있다. 정책당국이나 노인 복지를 염려하는 사람이면 관심을 가져볼 뉴스다. 청년들의 극심한 구직난 속에 '고령자 구인(求人)'의 새 풍속이 확산되고 있다는 신문보도가 자주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서울 창동의 한 마을버스 회사는 운전자 58명중 44명(76%)이 60세 이상이다. 이 회사는 기사모집 공고에 '60세이상 우대'를 명시하고 있다. 할아버지 기사들은 경력이 풍부하고 사고율이 적은 반면 월급은 젊은 기사들에 비해 훨씬 적어 회사측도 만족하고 있다. 서울의 한 '지하철 택배'업체는 28명 직원의 평균 연령이 70세다. 최연소자가 64세, 최고령자가 81세다.
경기도에서는 할아버지 주유원 붐이 일고 있다는 소식도 주목을 끈다. 지난해 통계지만 도내 1천800여 주유소의 주유원은 6천400여명인데 이중 할아버지 주유원이 4.5%인 289명이다. 10대처럼 빠르지는 못하지만 결근·조퇴·지각 한번 없이 성실히 일하는 노인들의 인기가 높아 앞으로 노인 주유원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재작년 노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노령화 속도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한국 경제 보고서'는 한국이 오는 2022년이면 65세이상 노령인구 비중이 14%를 넘어서는 '노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노령인구가 급증하는데 따른 문제는 벌써부터 논란거리가 되어 왔다. 무엇보다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노인층을 부양하는데 따르는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노령사회에 대비해 대책을 단단히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대책 가운데 가장 기대되는 것이 앞서 말한 노령인구의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젊은이의 일자리를 뺏지 않고도 노인들의 일자리를 만드는데 모든 국민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노인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노인 부양대책이다.
또 하나 강조되는 것은 노인복지 비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현재 정부의 노인복지 예산은 전체의 0.37%에 불과하다. 앞으로 급증할 노령인구를 감안할때 너무 부족하다. 노인복지 예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상속세의 상당부분 또는 상속세 모두를 노인복지에 쓰도록 법제화하는 것은 어떨까. 상속세란 결국 노령층이 남긴 재산에 의해 발생하는 세금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를 노인들을 위해 쓰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할 점은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는 평범한 사실이다. <구건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