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학교 가는 지름길에 점을 보는 집이 있었다. 그 집을 통해 가야 적어도 10분 정도 학교를 빨리 갈 수 있었지만, 울긋불긋한 천이 걸려 있는 그 집 앞을 지나기가 무서워 일부러 멀리 돌아서 가곤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몇몇이 그 점 집 앞에서 누가 오래 있는지 내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간 큰 녀석이라고 해도 5분을 견디지 못했다. 이상한 글씨가 쓰여 있는 대문 앞에 서있는 것도 그렇거니와 그 집안에서 스멀스멀 풍겨나오는 묘한 냄새가 역겨웠으며 더욱이 누군가 대문을 열고 나와 잡아가지나 않을까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무서웠던 것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초여름의 어느 날로 기억된다. 혼자 점집 앞을 꼭 지나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그 집의 창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겁이 유난히 많았던 내가 그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호기심이 발동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다. 어쩌면 그 안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결과를 우쭐한 마음으로 애들에게 뽐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침을 꼴깍거리며 까치발로 어렵게 들여다본 나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순간 보였던 방안의 기괴한 그림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그 방 주인과 순간 서로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며칠동안 꿈속에서 고통을 느껴야했던 그 서늘했던 여름의 기억을 어찌 필설로 다 할수 있으랴. 지금이야 실실 웃음이 나오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친구들이 아무리 ‘겁쟁이’라고 놀려도 난 그 집 앞을 단 한번도 지나가 본 적이 없다.
점, 한때는 미신이라고 업신여기던 역술의 열기가 가히 폭발적이다. 대략 현재 활동중인 무속인이 20만명, 역술인이 15만명, 운세관련 인터넷 사이트가 1천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점집이 기업화, 대형화되고 있으며 운세관련 700 유료전화서비스가 최대의 호황을 맞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옛날 골목의 한 귀퉁이 혹은 산 어귀에 은밀하게 숨어있었던 역술집을 대로변에서 보는 것도 이제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유명 역술인의 연 수입이 억대가 넘는다는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인공위성이 떠다니고 정보화 디지털 시대에 왜 우리 사회는 지금 점의 열풍이 불고 있는가. 세상이 다 자기것인양 분기탱천해야 할 젊은이들은 물론 고학력자일수록, 사회저명인사일수록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안달이다. 이용호게이트의 보물섬해프닝의 주역이었던 모인사의 경우 역술인의 말을 듣고 보물발굴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전해지고, 특히 최근 양대선거를 앞두고 나라를 짊어질 정치인들과 정치지망생들로 인해 점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역술의 호황은 역으로 말하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상당수가 자아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과학적, 합리적 지식으로 무장되어 있던 사회제도와 가치체계들이 무너지면서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뜻이다. 열심히 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게이트에서 밝혀졌듯이 부패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한탕주의는 소시민들의 실오라기 같은 희망감을 여지없이 끊어버렸다. 국민의 편이라고 믿었던 정부가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날이갈수록 심화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인한 좌절감으로 우리사회는 지금 이곳 저곳에 극도의 허무주의가 팽배해 있다. 무엇이라도 잡지 않으면, 혹은 믿음이 없으면 마치 끝없는 나락으로 빠질것 같은 불안감이 '도대체 내 팔자가 어떻다는 것인가'라는 극단주의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역술의 호황은 지금 우리사회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지 않으며, 상당수 국민들이 현재는 물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회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투명한 사회로 가지 못한다면 그래서 흘린 땀의 대가만큼 공평하게 배분되는 세상이 오지 않는다면 점의 열기는 더욱 확산될 것이다. 이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가.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