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반미주의자도 미국정치와 선거의 절차적 민주성만큼은 부러워한다. 민주·공화 양당이 대통령후보를 선출하는 예비선거에서부터 선거인단 투표까지 거의 1년에 걸친 대선과정은 지구상의 가장 흥겨운 정치페스티벌로 비쳐진다. 물론 재작년 부시-고어 대결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은 고어가 선거인단 수에 밀려 재검표 소동 끝에 고배를 마시는 바람에 미국 대선도 어딘가 결함이 있다는 의혹이 널리 고개를 들긴 했지만 말이다.
한데, 미국의 역사를 공부해 보면 이렇듯 모범적인 미국의 대선절차가 사실은 '반민주적인' 발상에서 비롯됐다는 흥미로운 해석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국독립을 이끈 지도자들, 이른바 '건국의 아버지'들은 주로 지주와 부르주아 계급 출신으로서 신생합중국의 권력이 머릿수에서 압도적인 서민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데 온갖 머리를 짜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지금과 같은 간선제 방식의 복잡한 대통령선거제를 정착시켰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출발이야 어쨌든 미국인들이 지난 200년 동안 자신들의 대통령선거를 대대적인 정치축제로 발전시켜 온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 광활한 땅에서, 그 많은 인구가, 그 긴 기간의 선거를 치르는데 적어도 우리같은 추잡한 진흙탕싸움 돈선거 시비는 없지 않은가. 만약 그랬다가는 첫 예비선거가 치러지는 뉴 햄프셔에서부터 당장 고발당해 이후 레이스에 명함도 못내밀게 된다고 한다.
우리도 드디어 국민이 참여하는 경선제 실험에 돌입했다. 여당인 민주당이 이미 제주와 울산에서 첫 경선을 치렀고, 야당인 한나라당도 준비중이다. 각 당 모두 대선후보 선출 뿐만 아니라 6월 자치단체장 후보도 주민이 참여하는 경선을 계획중인 곳이 많다. 헌정사상 54년만에 주요정당들이 미국식 모델을 본떠 정당의 민주화, 선거의 선진화를 향해 발걸음을 뗀 것이다.
물론 국민경선제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적지 않다. 초장부터 '국민경선제가 잘 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악담까지 등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선을 앞둔 곳마다 인력동원, 돈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더욱이 상대방의 국민경선 '흥행' 성공이 자기편의 반사적 손실로 이어진다는 계산에서 그 폐해를 정도 이상으로 과장해서 헐뜯는 경향마저 보인다. 일부 자치후보 경선은 내부의 불화로 경선의 틀마저 심하게 흔들린다. 그래서인지 우리 정치에서 국민경선제는 시기상조 정치쇼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말이야 바른 말로 국민경선제를 도입한다고 정당민주화가 저절로 확립되는 건 아니다. 지금같은 제한적 방식으로는 더욱 그렇다. 경선을 통해 국민의 뜻이 100% 반영된 후보가 선출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또한 큰 정당들이 국민경선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소규모 정당이 발붙일 자리는 더욱 좁아져 간다.
우리의 국민경선실험이 성공할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우선 돈경선 시비를 차단하고 가려낼 각당의 국민경선 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가가 미심쩍다. 경선불복사태를 점치는 목소리도 높다. 우리 정치의 타락과 후진성은 맹공격하면서도 새로운 시도에는 일단 완강히 저항하고 보는 이중적 심리도 넘어야 할 벽이다. 자신에게 불리하면 증거도 없이 '불공정시비'부터 거는 정치게임도 여전하다.
그러나 그 모든 지적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선제는 의미있는 실험이다. 그것은 지난 50년간 우리가 부러워해 마지 않았던 제도 아닌가. 또한 대의원경선제보다는 그래도 한걸음 더 나간 방식이다. 특히 지방선거 후보를 하향 공천하던 관행에 비한다면 획기적인 진전이다. 미비점은 보완하고 허점은 고쳐가며 정착시켜 나가야 할 제도라는 얘기다. 이번에 실패하면 국민경선은 다음번에도 '껍데기'가 된다. 제발 쪽박이 깨지는 일만은 하지 말아주기를 바라는 이 간절한 염원을 정작 정치권은 아는지 모르겠다.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국민경선제라는 실험
입력 200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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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1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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