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비밀은 없다. 아무리 감추려고 발버둥쳐도 언젠가는 모든 사실이 밝혀지는 법이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단 둘이 소곤거려도 벽에 있는 귀를 통해, 바람을 타고 세상에 알려지는게 만고의 이치다. '여인천하'에서 문정왕후와 경빈이 벽에 귀가 있다며 소곤거려도 결국 궐내에 말들의 성찬이 벌어지는 것을 그토록 보아오지 않았던가. 단지 시간이 좀 걸릴 뿐. 결국 모든 진실은 낱낱이 밝혀진다. 세상에는 비밀이란 없다. 최근 마치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벤처와 관련된 추악한 커넥션을 보라. 기업주, 금감원직원, 국책은행관계자, 벤처캐피털 직원, 그리고 약방의 감초로 등장하는 정치인들. 이들이 모여 쑥덕공론하며 마치 떡 주무르듯이 하며 코스닥에 상장해 주가를 조작해도 결국 진실은 밝혀져 이들은 줄줄이 구속되지 않던가.
4년전으로 돌아가 보자. 그때는 나라전체가 경제불황으로 자금마련을 하기가 꽤나 어려웠던 시절. 언론사 인터넷에 들어가 기사 검색란에서 한때 잘나간다던 '벤처기업'을 검색해보면 마치 약속이나 한듯 그 회사의 CEO들이 화려하게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4년전이라면 혹독한 IMF이후로 우리 경제가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때다. 인터넷 광고 대행업으로 시작했던 G사. 벤처의 신화를 만들었던 기업이다. 대부분기업들이 자금마련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이 회사는 온라인 공모주 청약을 실시해 10억원 가량의 자금을 마련했다. 자사의 홈페이지에 실린 기업광고를 클릭하면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적립했다가 일정액에 이르면 회원들의 계좌에 입금시켜주는 이 기업은 불과 12억원의 매출액 중 적자는 절반인 6억원을 기록했으나 코스닥 바람이 거세면서 주가는 무려 2천%나 급등했었다. 당시 금감위가 주가 조작에 대한 조사에 나섰으나 결국 무혐의로 처리됐고 기업사장 K씨는 적반하장으로 “주가 조작이란 있을 수 없다. 더 오를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사장의 공언대로 주식은 더 올랐다. 7만8천원이던 이 회사의 주가가 불과 한달 보름만에 30만7천원까지 급등했으니까.
기업인수 합병의 전문가라고 알려진 J. 주당 8천원, 총 14억원으로 전자문서 교환업체인 K사를 인수했다. 그리고 10분의1로 액면분할을 실시해 100억원을 벌었다. 회사의 전환사채도 사들여 200억원을 더 챙긴다. 성공신화를 묻는 기자에게 “능력은 있지만 돈이 없는 벤처경영인을 육성하는 에인절투자자로 계속 남고 싶을 뿐”이라며 자못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현재 G사의 주가는 880원. 기업인수 합병 전문가라던 J는 다름 아닌 정현준이다. 이들 외에도 우리는 몇몇의 타락한 벤처기업인들을 더 기억하고 있다. 보물섬탐사로 세간을 시끄럽게 만든 S사, 벤처캐피털 K사, 인터넷보안업체 J사, 반도체업체 A사. 불과 3~4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이들이 극구 부인하던 주가조작은 사실로 판명되었다. 불쌍한 것은 늘 그랬듯이 개미투자자 들이다. 알고보면 난다긴다던 억대연봉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결국은 피해자들이다. 머리위에서 추악한 커넥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그들 역시 몰랐을테니까 말이다.
하룻밤 자고나면 새롭게 터지는 벤처비리를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쏟아진다. 판을 벌인 이들은 폭탄이 열 번 돌아갔을 때 모두 자리를 뜨고 개미들과 몇몇 증권사 직원들이 모여앉아 폭탄돌리기 게임을 한 꼴이니 쓴 웃음마저 나온다. 모두들 제 살 닳아 없어지는줄 모르고 세월타령을 하고 있었으니 한심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벤처에 자금을 지원하는 국책은행 간부들, 아니 증권시장을 감독해야 할 기관의 직원까지 뇌물을 먹고 도장을 꾹꾹 눌러주었으니 귀신이라도 거기에 속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것이다. 각종 굵직굵직한 '게이트'에 그나마 무감각해졌으니 망정이지 한때 나라 전체가 거대한 투전판이었다고 생각하니 등줄기가 서늘하다. 내일은 또 어떤 벤처기업이 신문지면을 장식하려는지…. <이영재 (논설위원)>이영재>
벤처신화 신기루였나
입력 2002-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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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0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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