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문을 보면 화제성 기사로 부자들 얘기가 심심치않게 나와 눈길을 끄는 경우가 많았다. '부자뉴스'가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기사행간에 배어있는 의미를 새겨 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충격을 준 기사는 “심심해서 물건을 훔쳤다”는 어느 부유층 부인의 절도행각이다.
이 부인의 집은 서울의 60평짜리 아파트다. 남편은 수십억원대의 부동산을 가진 회사사장이다. 이런 부인이 지난 한해 서울의 백화점 명품관을 돌며 외제 고가품만을 훔치다 네차례나 붙잡혀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 지난3월 또 백화점에서 고가의 수입 실크 스카프를 훔치다 붙잡혔다. 이 부인은 “세상사는 재미가 없을때 명품을 훔치면 위안이 됐다. 그래서 심심하면 백화점에 훔치러 나갔다”고 말했다.
부족한 것 없이 남부럽지않게 살만한 중년부인의 상습 절도행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정신적 결함이 있다고 보아야 하지만 먹고 살기 힘들어 심심해할 틈이 없는 서민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일일 것이다. '행복한 부자는 드물다. 그러나 부자가 되길 바라지 않는 가난뱅이도 없다'는 말이 있지만 부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삼성금융연구원은 최근 우리나라의 부자숫자를 추정한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금융연구원이 정의한 부자의 범주는 부동산을 빼고 대략 10억원이상의 금융자산을 가진 사람이다. 이 정도면 여유있는 삶을 살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원이 여러통계를 근거로 계산한 결과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약 1%인 14만 가구가 이 기준에 맞는 부자로 추정했다. 금융자산이 많은 사람들은 부동산도 많이 소유한 계층일 가능성이 높다.
어느 조직이나 구성원 가운데 상위 1%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본인의 능력과 노력이 있어야 하지만 행운도 따라야 한다.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선택받은 존재로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앞서 말한 중년부인의 단순한 절도행위가 신문에 보도된 것은 부유층 부인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이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쳤다면 뉴스거리가 안된다.
이렇게 보면 부자는 공인이라 할수 있다. 뉴스의 대상이 되고 사생활이 노출되고 구설수에 오르내리기 십상이다. 우리사회에서 부자를 달리보고 서민과 다른 모범을 부자들에게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요즈음 우리사회에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높은 지위에 걸맞는 도덕적 행동을 의미하는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상류층의 솔선수범을 말한다고 할수 있다. 이 말이 자주 나오는 것은 우리 상류층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자들은 사회적 지도층이 아니거나 높은 공직에 있지 않더라도 부유층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한 것을 하여 많은 돈을 벌었거나 무슨무슨 '게이트'에서 거액의 뇌물을 받아 부자가 됐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사회상층부 1%에 들어가는 우리나라 부자들은 위치에 합당한 품위와 언행을 보여 주어야 한다. 부자가 되기까지 자신의 능력과 노력외에 알게 모르게 주위사람들과 사회적 도움이 있었음을 의식하고 사회에 대한 책무와 보은의식을 가져야 한다.
나라와 사회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공인의식은 높은 관직에 있거나 정치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내돈 내마음대로 쓰는데 무슨 참견이냐”고 하면서 과소비와 사치, 부도덕한 행동을 일삼는다면 그러한 부자는 진정한 부자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 부자임을 포기한거나 마찬가지일 뿐 아니라 실패한 부자, 가난한 부자임을 자인하는 거나 다름없다 하겠다. 존경받는 부자가 많이 나오길 우리사회는 기대하고 있다. <구건서 (논설위원)>구건서>
富者의 도리
입력 2002-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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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1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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