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신록의 계절이다. 새로 돋아난 나뭇잎들의 푸르름과 싱그러움을 볼 때마다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시국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5월의 풋풋함을 느끼기는커녕 한탄이 절로 나온다. 자고 나면 새로운 '게이트'가 등장하고 하루가 지나면 또다른 비리가 터지고 다음날이면 유명한 아무개가 검찰에 소환되고 또 누구 누구가 사법처리될 것이라는 뉴스에 머리가 어지럽다.

쉴틈없이 터져 나오는 각종 부정과 의혹들이 너무 많이 그리고 오래 계속되다보니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다. 서민들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큰 돈을 몰래 받고도 “대가성 없는 돈”이라고 우기고 검찰에 출두하면서 죄가 없다고 고개를 들고 카메라 플래시를 받는 정치인들이나 유명인사들이 며칠후면 대부분 구속되곤 했다.

이들 중에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 하거나 얼굴을 가리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별로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나만 죄가 있느냐. 너희들은 깨끗하냐”는 무언의 항변 아니면 “재수가 없어서…” “모함에 걸려서…”라고 남을 탓하고 반성할 줄 모르는 몰염치 때문이 아닐까. 계속되는 '게이트'시리즈 속에 한쪽에서는 카드빚 몇백만원 때문에 꽃다운 나이의 여성들을 며칠사이에 몇명씩이나 죽이는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란 말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설 땅을 잃은 것이 아닌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러한 암울한 세상에서 우리를 감동시키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어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은 최근 25명의 '아시아의 영웅들'을 선정,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해공항 중국 여객기 참사 당시 20여명의 승객을 구한 설익수씨가 뽑혔다. 25세의 관광회사 직원인 설씨가 한국의 대표 영웅이 된 셈이다. '타임'은 설씨를 “옳은 일이라는 이유로 엄청난 일을 해낸 가장 순수한 의미의 영웅”이라고 평했다.

설씨처럼 공인된 영웅은 아니지만 이에 못지않은 큰 일을 하는 인물들이 그래도 우리사회에 적지않게 탄생하고 있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보통 사람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을, 잘난 사람도 감히 하기 어려운 일을 과감히 해내는 사람이면 '우리시대의 영웅'이라고 해도 망발은 아닐 것이다.

마침 조스팽 프랑스 총리의 깨끗한 퇴장 뉴스가 눈길을 끈다. 대통령 선거에 참패하고 총리 자리를 물러나면서 그가 한 마지막 업무는 비자금의 국고반납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쓴 비자금의 사용처를 낱낱이 공개하고 276만유로(약30억원)의 비자금 잔액을 모두 재무부에 넘겼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달 초 목포시장인 권이담씨가 '무보수 명예직'으로 일하겠다는 평소 약속대로 95년7월부터 민선1·2기 시장으로 재임하면서 받은 연봉과 수당 등 4억여원을 시에 반납하기도 했다. 권 시장은 6월 지방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변영태 외무장관은 집을 떠나 어디를 가더라도 아령을 갖고 다니며 운동을 한 분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변 장관이 몇십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화제에 오르내리는 것은 아령때문이 아니다. 변 장관은 해외출장을 나갔다 귀국하면 출장비를 아껴 남긴 달러를 국고에 반납한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평생에 모은 재산 3천400억원의 거액으로 장학재단을 세우고 매년 150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삼영화학의 이종환 회장. 미국 프로골프협회(PGA)투어에서 한국인으로 처음 우승한 최경주 선수는 6년전부터 결손가정 자녀를 돌보기 시작하여 지금은 8명에게 생활비와 학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또 사회복지단체에 매해 연말에 1천만원 이상을 남몰래 기부해왔다.

이들이 사회에 내놓는 큰 돈이야말로 '대가성 없는 돈'이다. 우리는 지금 국민들에게 희망과 믿음을 주는 깨끗한 정치지도자인 우리시대의 '영웅'을 고대하고 있다. <구건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