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그동안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지방자치가 출범한지도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선거판만큼은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조기과열과 혼탁이라는 단어는 선거때마다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선거문화가 갈수록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하는데 더욱 타락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근까지 불법선거운동 등으로 입건됐던 지방선거사범은 모두 530명으로 지난 98년 지방선거를 한달 앞둔 시점의 40명보다 무려 14배 이상 늘었다. 현역 광역 및 기초지방자치단체장 16명도 불법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때문에 지방자치가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한 회의도 생겼고 그동안 적지않은 사람들이 지방자치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극한적인 주장까지 등장했다.

검찰도 지난 13일 대검청사에서 전국 공안부장검사 회의를 열고 금품선거, 흑색선전, 공무원선거관여, 공직수행빙자 금품수수 등 '공명저해 4대 선거사범'을 집중 단속키로 천명했다. 검찰이 선거사범에 대한 철저한 단속과 공정한 처리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초석으로 삼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이다. 선거때마다 나오는 검찰의 발표이지만 선거현장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선거사범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선거문화를 바꾸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지만 선거과열을 막기 위한 공명정대하고도 단호한 조치는 일단 검찰과 경찰 그리고 선거관리위원회의 몫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권에서 지방자치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지방선거를 항상 대선의 전초전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과열, 혼탁의 요인이 되고 있다. 여·야도 잇따라 지방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6·13선거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미 당 지도부가 총출동한지 오래여서 선거분위기는 과열되고 있다.

아직 역사가 길지 않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의 정착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지방선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구태여 풀뿌리 민주주의니 민주주의의 훈련장이니 하는 얘기를 끌어다대지 않더라도 지방선거는 성격상 전국선거인 총선이나 대선과는 여러 면에서 구별된다 할 것이다. 지역을 위해 일할 일꾼을 뽑는데 지나치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얘기다. 사실 지방의원은 명예직이다. 직무수행에 따르는 권리보다는 의무가 많은 것이 현실인데도 이렇게 과열된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혼탁한 선거과정을 감시하고 적발해 처벌하는 것도 이제 국가기관의 몫으로만 넘겨서는 곤란하다. 시민단체와 유권자들이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통해 선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그래도 안되면 표로 심판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정서상 대결문화는 너무나 뿌리깊은 것이어서 사람들은 싸움구경이나 불구경을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일종의 싸움인 지방선거를 그대로 방관하면서 구경만 한다면 시민의 권리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몇 사람의 대표자를 내세워 가려운 등을 긁게 하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유형의 소극적인 의식은 이제 버려야 하지 않을까.

월드컵 및 농번기와 겹치는 등의 문제로 시기조정 논란도 있었지만 어쨌든 이번 6·13 지방선거후보자 등록이 28일 시작됐다. 그 옛날처럼 막걸리 한 사발이나 고무신 한 켤레에 표를 팔던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 들려오지야 않겠지만 유권자들끼리 이제부터라도 감시의 눈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방관자적인 자세는 더욱 안된다.

포승줄에 묶여 줄줄이 구속되던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장들의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은 4년전 투표했을 때를 생각하며 속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이제 4년이 지나고 다시금 선택을 해야할 시점이 다가왔다. 앞으로 4년 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고 지역사회와 후손들에게 원망을 남기지 않으려면 부끄럽지 않은 양심으로 선거문화를 바꾸는 주역이 돼야 한다. 등록한 후보자들도 역시 이번 지방선거에서 만큼은 떳떳한 양심과 행동의 변화만을 유권자들이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월드컵축제기간중 열리는 지방선거도 축제의 장이 돼 우리의 달라진 선거문화의 모습을 60억 세계인들에게 함께 보여줄 수 있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李俊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