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온 나라, 모든 국민의 화제는 단연 월드컵이다. 내일로 닥친 지방선거나 대선 정국의 이야기는 뒷전에 밀린지 오래다. 월드컵 경기가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이 어지러운 세상을 보낼 수 있을까. 때이른 6월의 무더위를 넘기는데 더욱 허덕이지 않았을까. 무슨 무슨 '게이트' 추문에 분노하고 계속되는 부정부패, 비리사건에 놀라야 했던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줄 만한 것은 그동안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 축구팀의 월드컵 선전(善戰)은 이 모든 시름을 날려버렸다. 한국 축구사의 새로운 신화가 시작되면서 국민들은 민족적 자긍심을 되찾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거국적 응원을 통해 국민이 하나 되고 우리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귀중한 체험을 갖게 됐다. 월드컵 대회와 우리 대표팀의 승리는 기적과 같은 놀라운 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월드컵 대회가 끝나면 어떻게 하나 벌써부터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게이트'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정치판의 이전투구가 재등장할 것을 염려하는 국민들이 많다. 이제 한국 정치에도 새로운 신화창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 국민들이 미래를 밝게 보고 기대할 수 있는 정치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정치신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정치인과 정치지도자들이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을 배우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지금 각계에서는 '히딩크학'을 연구하고 본받자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경제계에서 '히딩크 경영'을 기업경영에 접목시키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고 한다. 히딩크 리더십은 사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도 알고 있는 원리 원칙을 소신껏 실천한 것에 불과하다.

히딩크 감독은 '실력'을 대표팀 선수 선발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다. 로비나 연줄, 기득권과 유명세 등을 철저히 배제했다. 그리고 기초체력 강화를 위해 혹독한 훈련을 반복했다. '월드컵 16강 진출'이란 비전을 제시하고 선수들을 독려했다.

반면 우리 정치는 어떠했나. 정계에는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편승하는 병폐가 여전했고 연줄과 지연에 따른 파행인사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따른 폐해가 얼마나 큰지 잘 알면서도 이를 고치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이용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3류정치'가 판을 쳐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저질정치의 책임을 전적으로 정치인이나 정치지도자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이러한 정치가 되풀이되도록 눈을 감고 외면해온 유권자의 책임 역시 크다.

'정치신화'의 창조는 유권자의 동참과 '응원'이 없으면 안된다. 정치신화 창조의 첫걸음은 당장 내일 지방선거 투표에 참여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자치단체를 이끌어 갈 단체장이나 지역의회의원 후보로 누가 나왔는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않고 선거공보물은 뜯어보지도 않고 버리는 유권자들이 대부분이라면 무슨 올바른 정치풍토가 조성될 수 있을까. 예상 투표율이 50%도 안된다고 걱정들을 하고 저질, 수준미달의 후보들이 당선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데도 투표는 외면하고 부실정치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한국축구는 이번 월드컵 대회에서 고질적인 약점들을 떨쳐내고 새롭게 태어났다. 한국 축구사에 새로운 역사를 기록했다. 다음은 정치가 변할 차례다. 지방선거에 이어 연말에는 대선이 있다. 한국정치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야 할 시기다. 이를 위해서는 유권자가 나서야 한다. 월드컵의 응원열기와 같은 관심과 열정이 정치권에도 이어가도록 해야 한다.

유권자 파워를 통해 새로운 한국정치의 역사를 창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유권자가 투표로 자격미달의 후보나 저질 정객들이 정계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정치신화' 창조의 첫걸음이다. 새로운 정치를 바란다면 새로운 마음으로 투표장에 나가자. 그리고 올바로 투표하자.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구건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