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도 부럽지 않아요' '그동안 조국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이젠 정말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감격할 따름입니다'. 박지성 안정환 홍명보의 슛이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의 골문을 흔들면서 파죽지세로 한국팀이 승승장구할때 감격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른바 '월드컵 세대'들이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하는 말들이었다. 태극기로 만든 ‘배꼽티’를 입고 열심히 응원하는 스무 살의 여성,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승리의 환호 속에서도 어디서 나타났는지 주변을 열심히 청소하는 청소년들, 저마다 얼굴에 갖가지 태극문양을 하고 '대~한민국'을 죽어라 외치는 중학생들.

정말로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이유없이 무조건 좋고 자랑스런 우리의 'W(WorldCup)세대'들이다. 현재로서는 아무런 걱정도 없는 세대다. 붉은 악마에서 '레드 콤플렉스'를 느끼는 기성세대들의 고정관념마저도 타파시킨 무서운 청년들이 아닐 수 없다. 공산주의자를 연상시켰던 빨간색을 '정열'과 '환희'의 상징으로 변화시킨 내재적 힘을 가진 그들이다. 태극전사들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100만명에서 시작해 700만명까지 건국 이래 최대의 인파를 거리응원의 장(場)으로 이끌어낸 괴력의 소유자들이다. 20여년전 검정교복에 빡빡머리로 연상되는 475세대(40대 70년대학번 50년대출생)들은 교련반대시위를 벌였다. 386세대는 15년전 광화문 그 자리에서 '호헌철폐, 직선쟁취'를 외치며 6월 항쟁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그 자리에서 애국가와 아리랑을 록 음악에 맞춰 부르는 'W세대'를 보노라니 감회가 새롭다.

응원인파가 거리를 뒤덮었다는 의미에서 ‘거리응원 세대’로도 불리는 이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이니까 그렇지, 뭐'하며 매사에 자조섞인 불평을 늘어놓던 기성세대들의 푸념들을 일순에 날려버렸다. 딱딱하기 이를데 없었던 '국가'와 '애국심' 그리고 '태극기'라는 단어들을 사랑스럽고 친근하도록 만들었고, 국가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이 하라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참여하는 자발적인 국민적 축제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 거리응원단의 주축을 이루는 15~25세 가량의 이 젊은 세대가 거리응원전을 통해 월드컵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축제문화’의 한마당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너나할 것 없이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어깨를 같이 걸고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에서 분단 반세기를 살아오면서 갈등과 반목에 익숙했던 우리들에게 승리와 화합의 모습에 한 데 어울리게 했고 지역주의 이기주의 학벌주의 그리고 계층과 신분 구분의 장벽을 뛰어넘게 해 그야말로 국민대통합의 계기를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했을 정도다. 2002년 6월을 살아가는 한국인, 그리고 그 중심에 서있는 '월드컵 세대'들 모두가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이제 이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국가발전을 위한 터닝포인트(Turning Point:전환점)로 이어가야 한다. 온갖 갈등의 멍에를 벗어던진 'W세대'들은 앞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가장 막강한 '차세대 전투기'들이기 때문이다. 각종 분야에 있어서 한국 사회의 향배가 이들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에서조차 앞으로 있을 8·8재·보선과 대선 등 향후 정치일정에 이들이 끼칠 영향이 지대하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각 당이 대책마련에 분주하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이들의 분출하는 에너지와 역동성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연결해나가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붉은 악마' '레드 열풍' 등을 통해 확인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정서와 고정관념의 파괴, 다양한 행동패턴들은 분명 앞으로 한 단계 성숙된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외국언론들이 '무섭다'는 한 마디로 함축한 표현이 잠재된 가능성을 엿보게 하고 있다.

'하늘에 조각구름 떠있고/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중략…아~아~대한민국/아~아~우리 조국…' 20여년전 386과 475세대들이 즐겨 부르던 유행가 '아! 대한민국'이 이제야 현실로 나타났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감정일까. <이준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