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위 사람이 좋은 배우자나 친구·동료들을 잘 만나면 인복(人福)이 있다고 한다.

같은 비유로 국민이 훌륭한 사회지도층이나 나라의 지도자를 잘 만나면 ‘지도자 복’이 있다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국민들은 ‘지도자 복’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지난주에 벌어진 우리사회 일부 지도층의 갖가지 행각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의 주목을 끈 것은 우리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총리 탄생이 불발로 끝난 사실이다.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총리서리 임명에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동의안이 부결되기까지 20여일 사이에 우리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 얽힌 많은 의혹과 문제들을 듣고 보며 씁쓸하면서도 허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결과는 총리지명자 한 사람만의 불행이 아니라 나라의 불행이기도 했다. 여성 총리지명자가 공직자로서의 자질과 도덕성에 무슨 하자가 있었는지 또 정치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를 떠나 참신한 정치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해온 국민의 실망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국민의 존경을 받고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정치지도자의 탄생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새삼 ‘지도자 복’을 따지게 된다.

이런 가운데 유명한 대학교의 총장을 지낸 분이 공항에서 출국세 1만원을 내길 거부하고 공항 여직원에 폭언을 했다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그런데 이 분이 며칠후 입국하면서 엉뚱한 출국납부금 영수증을 보이며 출국세 납부를 주장하며 다시 세인의 입방아에 올랐다. 그리고 며칠후 은행 온라인을 통해 1만원을 송금했다는 사실이 신문에 보도됐다.

어떤 지방 국립대 총장이 해외 가짜 학위취득 브로커 노릇을 했다는 뉴스에 놀란 터에 이 무슨 해프닝인지. 대학교 총장이라면 어느 나라고 사회적 존경과 국민의 신망을 받는 위치에 있는 지도층이 아닌가. 그런데도 이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런가 하면 적지않은 지방자치 단체장들과 시·도의회 의원들이 여러차례 교통법규 등을 위반해 벌금이나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있다가 차량이 압류되는 사례가 많다는 뉴스도 나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벌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위치에 있는 단체장이나 솔선수범해야 할 시·도의회 의원들이 법규를 어기고도 배짱을 부리고 있으니 이러고도 시민들에게 성실납세를 강조할 수 있을까. 법집행자가 법을 안 지키니 일반 서민들이 법과 질서를 잘 지키길 어떻게 바랄 것인가. 일부 사회지도층의 이러한 비뚤어진 권위의식과 몰염치에 우리는 다시 한번 ‘지도자 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니 공권력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공권력 경시풍조가 확산되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경범죄 처벌법을 위반해 범칙금 납부통고를 받은 사람 가운데 범칙금을 내지 않고 즉심에도 응하지 않는 법규 위반자 비율이 99년의 9.4%에서 2000년에는 17.9%로 높아진 것으로 조사결과 나타났다.

이처럼 위아래 할 것없이 법규 위반에 대해 반성할 줄 모르고 법적 제재에 대해 반발하는 경우가 늘어만 가고 있다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 극소수의 문제인물이 돌출행위를 한다고 해서 이런 일부 지도층의 부도덕한 행태를 전체 지도층의 일인 것처럼 과잉반응을 보이며 ‘지도자 복’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불과 몇 %도 안되는 지도층 인사들이 보여주는 탈선행위는 국민들에게 충격과 함께 냉소주의를 확산시키기에 충분하다. 인복이 없다면 ‘지도자 복’이라도 있어야 서민들이 삶의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구건서 (논설위원)>